[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한국 섬유산업의 큰별'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사진)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부친인 고(故)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1957년 4월 모태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했다. 한국나이롱은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한 기업이다. 고인은 1977년 그룹 회장에 오른 후 1996년 큰 아들 이웅열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고인은 섬유 사업 중심의 코오롱을 화학, 건설, 제약, 전자ㆍ정보통신 기업으로 키웠다. 노사 상생에도 앞장서며 1982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장도 맡았다.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1982년 금탑산업훈장, 1992년에는 기업인 최초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는 코오롱그룹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 유족으로는 2010년 작고한 신덕진 여사와의 사이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등 1남 5녀가 있다. ◇한국전쟁 후 국내 첫 나일론 공장 세우다= 고인은 일본 오사카 흥국상고와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부친인 이원만 선대 회장과 함께 국내 섬유 종가인 코오롱그룹을 일으켰다. 6ㆍ25전쟁 이후 나일론 수요가 급증하자 부친과 함께 1957년 대구에 코오롱의 모태인 한국나이롱을 세우고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을 지었다. 코오롱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화섬산업 중흥기를 타고 전성기를 맞았다. 고인은 1977년 신설된 그룹 회장에 올라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을 ㈜코오롱으로 합병했다. 이후 1983년 고려나일론을 인수했고 1985년부터는 필름과 비디오테이프, 메디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코오롱을 재계 순위 15위까지 끌어올린 밑거름이 됐다. 1995년 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은퇴했다. 이후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오운문화재단을 설립, 사회활동에도 힘썼다.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ㆍ물질적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한다'= 고인은 1987년 중앙대 강연에서 자신의 기업관을 소개했다. "기업은 국가 경제의 주체이며 사회 발전의 원천이고 직장인의 생활터전이다.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ㆍ물질적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건 기업가의 사명일 것이다." 고인은 이 같은 기업관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 기업가로서의 정도를 걸었다. 그는 자서전에서도 그룹 전체가 서서히 산을 오르고 있다는 등산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경영했다고 밝혔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나 성급한 경영을 지양했다. 자서전에서 "폴리에스테르를 독점할 수 있었던 때에도 '나일론쟁이니 나일롱이나 한다'고 하다 그 기회를 다른 회사에 줬다"고 소개했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재벌'이 '죄벌'로 불리는 등 한국에서 기업가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을 한탄하기도 했다. 고인은 50년 넘게 신은 가죽 슬리퍼를 비서실이 버리자 호통을 쳐 쓰레기통에서 이를 다시 찾도록 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 10년 넘게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등산을 갈 때도 국산 9인승 승합차를 애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ㆍ재계, 스포츠계 등 각계 각층 애도 물결 이어져= 고인은 체육계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975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은 후 스포츠에도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마라톤에 집중 투자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마라톤 기록 경신자에게 연구장려비로 1억원을 내걸어 활력을 불어넣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고인의 후원을 받은 마라토너다. 고인은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4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아 노사 상생에도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980년대는 노사문제가 심각하던 상황이어서 노사문제를 담당하는 경총 회장은 다른 기업 경영자들이 꺼리던 자리였다. 하지만 고인은 2년 임기 회장을 7차례나 지내며 노사문제 해결에 앞장섰다.1990년에는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여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 발족에 기여했다. 1994년 산업평화선언도 주도했다. 고인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는 각계 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빈소에 보내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상득 전 의원, 한승수 전 국무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정ㆍ관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효성그룹의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 등이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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