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섬유업계 큰 별이자 한국 섬유산업의 전성기를 이끈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8일 별세했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2세대 경영자지만 부친인 창업주 이원만 선대회장을 도와 창업 초기부터 회사 기틀을 다져 재계에서는 1.5세대로 불린다. 실제 코오롱그룹은 이원만 창업주가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틀을 마련하고 나서 해방 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57년부터 부친인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돕기 위해 경영에 참여했다.1957년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공장이자 코오롱 전신으로 불리는 한국나일론을 설립하면서 지금의 코오롱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후 1977년 한구폴리에스텔과 합병하고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상호를 변경, 전면 경영자로 나섰다.이 명예회장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에도 속도를 냈다. 1973년 국내 최초로 자동차소재 사업에 진출을 이끌었고 1980년대엔 필름 및 산업자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1990년대에는 고부가가치 섬유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93년 초극세사를 이용한 고도의 원사기술, 초정밀 공정관리 기술이 결집된 첨단 섬유소재 ‘샤무드’를 세계에서 3번째로 양산했다.장남인 이웅렬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1997년부터는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등산과 낚시를 즐기며 노후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세 경영을 시작한 이 회장은 1997년 닥친 외환위기로 모진 시련을 겪었다. 한국화낙,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를 매각했고 (주)코오롱은 스위스 보스턴투자은행으로부터 5000만달러 외자를, 코오롱상사도 BMW로부터 2000만달러 외자를 도입했다.그룹의 미래라 불리던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견뎌낸 후 코오롱그룹은 다시 사업다각화에 박차를 가했고 최근에는 수처리 분야에 관심을 쏟고 멤브레인 등 관련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명예회장은 한국 체육계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1970년에 여자 실업농구연맹 회장을 맡은 것 외 대한농구협회장, 대한골프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교마라톤대회를 만들고 코오롱 마라톤팀을 운영하면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같은 대표선수들을 육성했다.한편 2012년에는 이웅렬 회장의 장남 규호씨가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입사하며 4세 경영 준비에 들어갔다. 앞선 3세 경영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 5녀를 뒀고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외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웅렬 회장은 코오로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코오롱의 지분 44.06%를 보유하고 있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8.4%을 보유 중이다.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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