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어느 농촌부부와 카이스트

기부의 선순환 고리 만들어야

▲카이스트 정문.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오늘은 제주도의 한 부부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총장 강성모) 이야기입니다. 오기홍·김순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제주도에서 감귤농장과 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가 21일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를 찾았습니다. 카이스트에 도착한 이들은 강 총장에게 선뜻 5000만원을 건넸습니다. 농사짓는 농부가 5000만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작정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쳇말로 농사짓는다고 하면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농촌 부부가 5000만원을 들고 왔으니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 부부, 5000만원을 건네면서 하는 말이 귀를 쫑긋 세우게 합니다. 남편 오지홍씨의 말을 들어보죠. "5000만원 이거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거 아니다. 우리 자식들이 그동안 받았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다."오씨는 '5000만원은 기부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오씨의 말은 이러합니다. 오씨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두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두 카이스트에 입학한 후 학업을 마쳤습니다. 2005년에 큰아들인 오환희씨가, 2009년에 둘째 아들 오환엽씨가 카이스트를 졸업했습니다. 여기에 며느리까지 카이스트 출신이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모두 카이스트 졸업생이었던 거죠.

▲오기홍·김순이 부부.[사진제공=카이스트]

오씨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두 아들이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는 동안 장학금 등 많은 혜택을 받았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아들들이 받은 장학금을 반드시 카이스트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농사일로 모은 돈을 이제야 전달하게 됐다." 아들이 카이스트를 다니며 누렸던 혜택을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5000만원을 들고 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기부가 아니다'라고 오씨가 말했던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는 뜻입니다. '기브앤드테이크(give and take)'. 혜택을 받았다면 누군가에게 이를 되돌려주고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오씨의 '아름다운 기부'를 보며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씨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동으로 기부를 이끌었습니다. 오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달 전 노트북 한 곳에 꽁꽁 저장해 놓았던 파일을 하나 꺼내봤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인재를 육성하고 있는 카이스트와 미국의 명문 공대라 부르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기부금 현황에 대한 통계자료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카이스트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주체는 기업과 일반인들이었고 MIT는 이와 다르게 동문들이 가장 많이 기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정적으로 집계한 결과 2013년 MIT는 총 632억3000만원의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이 중 동문들이 전체의 71%에 이르는 449억60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카이스트는 2012년 총 기부금 121억3000만원 중 동문들이 낸 기부금은 고작 3%에 머문 3억4000만원에 그쳤습니다. MIT는 동문이 가장 많이 기부하고 학부모와 기업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기업(45%)과 일반인(43%)이 90%에 이르는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장학금으로 다닙니다. 국가에서, 나라에서, 기관에서 주는 장학금이지만 실제 이 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죠.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해 뛰어난 인재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키워주는 셈입니다. 카이스트에 다니는 동안 많은 혜택을 받는 게 사실입니다.

▲MIT는 동문들이 전체 기부금의 71%를 기부했다.[자료제공=카이스트]

MIT 동문들은 자신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받았던 혜택에 대해 '기브앤드테이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카이스트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뿐이지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인식이 낮은 게 현실입니다. 힘들게 농사지어 어렵게 만든 5000만원을 선뜻 들고 온 농촌 부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이건 기부가 아니라 내가 받았던 혜택을 되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 부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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