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희[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쇼트트랙 '여제(女帝)' 박승희(22ㆍ화성시청)가 얼음 위를 다시 달린다. 익숙했던 수식어 대신 스피드스케이터로 도전을 시작했다. 출발은 미약하지만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확인하며 첫 시험대를 마쳤다. 박승희는 지난 1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제1차 공인기록회 여자 1000m에서 1분20초40으로 출전 선수 열두 명 가운데 1위를 했다. 공인기록회는 각 종목 공식 기록이 없는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발경기에 도전하기 위한 자격을 만드는 준비과정이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박승희 역시 새 기록을 측정하기 위해 초ㆍ중ㆍ고생과 함께 경쟁에 나섰다. 순위보다 결승선 통과 기록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그가 세운 기록은 지난해 10월(23~2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챔피언십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과 비교하면 4위에 해당한다. 이상화(25ㆍ서울시청ㆍ1분17초05), 김현영(20ㆍ한국체대ㆍ1분19초59), 이보라(28ㆍ동두천시청ㆍ1분20초23) 다음이다. 박승희는 "캐나다에서 돌아와 바로 경기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기록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47)는 "대표 선수들이 보통 1분 19초~20초대 초반 기록을 낸다. 시작하는 단계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크게 좋거나 나쁘지 않은 무난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박승희는 지난달 6일부터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 조상현 코치(26)가 이끄는 사설빙상팀과 함께 한 달 동안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400m 빙상트랙 두 바퀴 반을 도는 1000m 종목에 초점을 맞췄다. 쇼트트랙 출신의 장점을 살린 코너워크와 직선구간이 고르게 분배된 종목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쇼트트랙과는 준비 운동부터 쓰는 근육까지 전혀 다르다. 스피드스케이팅이 더 많은 체력과 순간 스피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훨씬 힘들다"고 했다. 은퇴한 전 국가대표 이규혁(36)도 "박승희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고 기본적인 스케이팅이 좋아 긍정적"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쇼트트랙과 스피드는 활주하는 자세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피겨나 아이스하키 출신 선수가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샤니 데이비스(32)나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26ㆍ대한항공)처럼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종목을 전향하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직선과 곡선구간에서 일정하게 속도를 내야하는 빙속 단거리(500m, 1000m)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종목이다. 둘레 111.12m 트랙에서 진행되는 쇼트트랙은 코너를 여러 번 돌면서 상대 선수를 추월하는데 중점을 둔다. 직선구간에서 승부를 걸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빙상 전문가들은 박승희가 스피드스케이터로 성공하기 위해 코너에서 붙은 속도를 직선구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무는 "코너워크에 장점이 있지만 직선구간 100m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조 코치는 "쇼트트랙 선수들은 코너를 도는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순발력과 근지구력이 다소 부족하다"면서 "전지훈련 기간 동안 '스쿼트(역기를 어깨에 메고 앉았다 일어나는 훈련)'와 지상훈련의 비중을 높여 하체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어색한 첫 걸음이지만 박승희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선수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8월에는 3박4일 동안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 촬영에도 동참하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종목 전향을 결심한데는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국가대표인 친언니 박승주(24ㆍ단국대)의 조언도 한몫했다. 박승희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니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전향하라'는 언니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박승희는 22∼23일 열리는 2차 공인기록회에서 다시 기록을 측정한 뒤 29∼31일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전국남녀 종목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태극마크에 도전한다. "성급하게 도전하지 않겠다"고 자세를 낮췄으나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좋은 기회에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조 코치도 "쇼트트랙으로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지만 배우려는 자세가 남다르다.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훈련하고 있어 기록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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