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금리=투자' 공식, 한국선 이미 깨졌거든요

기준금리 추가 인하로 경기 살려라 압박하지만…

(출처:한국거래소)

"유보율 높을 땐 금리 내려도 투자에 무덤덤…금리·투자 역함수 그래프 맞지 않아"[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한국경제가 기준금리를 내려도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시장의 압박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저금리로 투자를 촉진한다는 공식은 이제 시장에 들어맞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통화량을 늘려도 회사채와 대출금리 등 시중금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금리 통화정책이 효력을 잃은 상태를 뜻한다. 한은도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었다.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문우식 위원은 "유동성 함정으로 금리인하 효과에 제약이 있다"고 언급하며 기준금리 동결을 주장했었다. ◆日本化의 공포 = 금리는 2.25%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00%를 겨우 넘는 최저 수준이지만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기업의 6월 말 기준 유보율은 1092.9%로 지난해 말보다 69.4%가 뛰었다. 자본금의 11배를 잉여금으로 묵혀두고 있는 셈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투자와 금리의 역함수는 경제학의 기본개념이지만, 상황이 변하면 그래프가 옆으로 이동하게 된다"면서 "특히 기업이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면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지만, 유보율이 높아 자금이 널널한 상황에선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투자에 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시중통화량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의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시중통화량(M2)은 2013조9351억원(평잔 원계열 기준)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6.5% 늘었다. 이는 2010년 12월(7.2%)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주체별로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보유한 M2는 6.4%, 기업은 4.2% 각각 늘고 예금취급기관 이외의 기타 금융기관 보유 M2는 16.5%나 증가했다.이 때문에 지금 한국경제 상황이 '유동성 함정'을 불러왔던 일본의 198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일본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치ㆍ경제적인 저금리 요구가 지속돼왔다. 이는 가계대출 확대 위험에도 대출조건을 풀어 부동산을 살리는 방식이었다. KB투자증권은 한 보고서에서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 대출조건을 완화하면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모색했는데 이는 현재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면서 "일본이 간 길을 우리가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는 저금리의 득과 실을 조금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한국은행)

◆유동성 함정인가? = 홍성국 KDB대우증권 부사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함정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유동성함정은 전통경제학에선 아노말리(비정상 상태)로 여겨졌지만 미국이 양적완화로 4조를 풀었는데도 경기회복이 더디면서 비정상이 정상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화승수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금리가 떨어져도 고령화나 공급과잉 문제로 투자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유동성 함정은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도 없고 금리인하 효과도 없는 상태인데 아직 그 정도라고 보진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금리보다는 수익률의 문제인데 대외 경제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돈을 넣었을 때 수익이 기회비용만큼 나올 수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은 고위관계자도 "기업들이 투자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마치 '너먼저' 게임을 하는 것처럼 투자기회를 미루고 있다'면서 "내가 아닌 다른 기업이 투자를 해 수요가 살아난 걸 확인한 다음 투자에 들어가려고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금리 인하의 효과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고르게 퍼지지 않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구조적 유동성 트랩(함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주체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대기업 착시를 제거하면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되는 기업이나 빚부담에 시달리는 가계들도 있는데 이들에게 저금리의 효과가 돌아갈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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