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성시경 될 순 없죠'…실용예술 '출구' 찾는 김형석 한국예술원 학장

'오디션 열풍이지만 무대에 서는 건 소수…실용예술의 사회적 통로 마련해줘야' '예술 교육은 재능보다 태도 일깨워야…창작의 힘은 '콤플렉스'에서'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박진영, 신승훈, 성시경 등 한국 대중음악계 스타들의 노래를 20년 넘게 만들어온 작곡가 김형석(48)은 한국예술원 학장으로 취임하던 날 형형한 빛깔의 셔츠 차림으로 연단에 섰다. 물론 그 위에 검은색 학장 가운을 입었다. 작업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아티스트 김형석'에 '예술교육기관의 리더 김형석'이 더해졌다. 한국형 콘서바토리(conservatory, 도제식 교육을 통해 직업 예술가를 길러내는 교육기관)로 도약하는 한국예술원에서 취임 한 달 만에 그를 만났다. ◆"예술교육은 서비스업"= 창작을 향한 그치지 않는 열망을 가르치는 일로 전환하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어린 친구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때 느끼는 '날것이 주는 신선함'은 자신의 창작에도 큰 자극을 준다고 그는 말한다. "대중음악은 일종의 사회학이라고 생각해요. 순수예술과 달리,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창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모든 최신 정보와 트렌드가 섞이고 젊은이들의 문화가 더해져야만 대중과 호흡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학생들과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물론 가르치는 데 고충도 크다. 예술을 교육한다는 건 그 개념과 철학에서 특별한 고민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육활동과 달리 일방적으로 이뤄질 수 없고, 교수자와 학습자가 끊임없이 접촉하며 소통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자신을 향해 '무엇을 던져주기만을' 요구할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예술교육에서 선생은 '탁 건드려, 진동을 주는 역할'을 해요. 뭘 말해서 그대로 따라 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이러한 패턴의 교육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미비하니, 스무 살 넘어 갑자기 이런 방식을 일깨우고자 하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김 학장은 예술교육이 '서비스업'이라는 개념을 끌어왔다. 학생으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려면 그가 본디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손님이 뭘 원하고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야 학생의 마음을 읽고 그 안의 동기와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 그는 "이 과정의 성패는 선생님들이 학생들과의 스킨십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예술원이 지향하는 교육관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김형석 한국예술원 학장

◆"처음엔 '실성'한 듯, 나중엔 '성실'하게"=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과연 나에게 재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타고난 소질'이 지배하는 영역이 크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엔 '실성한 듯' 영감을 쏟아내는 게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성실하게' 매달리는 사람이 좋은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말한다."창작의 영감은 '꾸준함' 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믿음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꾸준히 창작하게 하는 힘은 '내가 부족하다는 콤플렉스'에서 나옵니다. 예컨대 초반에 재능만으로 성장했던 학생들은 한 번 넘어지면 좌절이 매우 클 수 있어요. 재빨리 일어서기엔 그간 재능에만 너무 의존해왔기 때문이죠. 그러나 내게 특별한 재능이 없어 꾸준히 해야 함을 인식하는 학생은 넘어져도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이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게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김 학장은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중음악 작곡가로 손꼽히는 그에게도 작곡이라는 작업은 늘 콤플렉스로 다가온단다. 그는 "20년 정도 했으면 줄줄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그래서 항상 사방에 촉수를 세우고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팝의 빛과 그림자= 그가 교수로 몸담아왔던 실용음악과의 역사는 길지 않다. 최근 몇년 새 각종 오디션 TV프로그램과 케이팝(K-Pop)의 영향으로 수요와 공급이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모든 학생이 무대에 설 수는 없어요. 무대에 서지 못하는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길을 뚫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가 무조건 수용하기만 하고 배출할 통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죠."그는 최근 대형마트 매장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작업하는 데 학생들을 투입하고 있다. 전국 150개 매장, 200만명이 오가는 곳에서 학생들이 만든 곡이 흘러나온다. 그 음악들을 수록한 애플리케이션 제작도 실험 단계에 있다. 서정적인 노래만 만들다가 마트 매장 음악을 만들려면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이 작업이 매우 흥미롭고, 실용예술의 사회적 통로를 열어주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대중음악은 이별과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이 90% 이상이지만, 마트에서 나올 수 있는 음악의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주방용품 브랜드가 새로 나왔다고 해볼까요? 도마소리를 이용해서 리듬을 만들면 주방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하는 음악이 탄생할 수 있는 거죠." 김 학장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해결돼야 하는 문제로 '다양성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돌에 편중된 가요계의 지형이 모든 문제에 얽혀 있다고 본단다. 17~21세 청소년들이 공연하는 댄스음악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소위 '돈이 안되는' 음악으로 승부하려는 사람은 미디어의 문을 열 수 없는 현실에서 실용예술을 교육하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출구를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등이 대안이 되고 있는 추세이고, 앞서 언급한 대형마트의 매장 음악도 그가 찾은 '세컨드 미디어' 가운데 하나다. 미디어가 알아서 해주길 기다려선 안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미디어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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