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민주적 논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재창조해 나가야 한다. 불평등에 대해 싸우고 행동하고 쟁취해야 한다."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가 방한 마지막 날인 20일 오후 연세대 백양콘서트홀 강단에 올라 한 말이다. 피케티 교수는 부의 편중 현상을 ▲저성장 기조 속 자본축적 ▲수퍼 경영자들의 고액 연봉 ▲교육 불평등 ▲민영화 현상 등으로 구체화하며, 이 같은 흐름들이 나중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유럽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을 했던 이유는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열린 이번 강연에는 800석 넘는 좌석이 청중들로 빼곡히 찼다.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이어진 피케티 교수의 강연은 올해의 화제작 '21세기 자본'(글항아리)의 주요 내용들을 저자가 직접 소개한 후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서 발간된 후 영어로 번역됐고, 최근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어판이 발매됐다.피케티 교수 자신의 책에 대해 "소득 불평등에 대한 가장 방대한 데이터가 담겨 있다.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합동해 연구한 내용"이라며 "'불평등'은 오랫동안 중요한 논쟁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이 그에 대한 해결책이 되진 못하겠지만, 그 이슈를 부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자본소득비율'이라는 개념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이는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을 뜻하며, 높아질수록 불평등 현상은 심화된다는 것이 피케티 교수의 논리다. 그는 '1870~2010년대 유럽 내 국가들의 자본소득비율'을 나타내는 데이터를 소개하며 "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소득비율이 쭉 상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자본의 축적을 의미한다"며 "자본 축적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연금이나 부동산 등 자본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가 제시한 1870~2010년대 유럽 내 국가들의 소득 대비 자본 비율. 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피케티 교수가 제시한 세계 부유국들의 민간 자본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모습을 담은 통계 자료.
피케티 교수는 또 "한 국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차이가 크면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많은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저성장 기조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세를 낮추면 부의 편중현상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이번 강의에서 표로 제시한 '미국의 전체 소득 중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의 증가 추세와도 맞닿아 있는 흐름이다. 피케티는 "1950년대 이 비율은 35%정도였는데 최근 들어 그 절반을 넘어서면서 70% 이상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퍼경영자들의 고액 연봉을 문제로 거론하며, "임원들이 과연 그 보수를 받는 것이 정당한지 따져봐야 할 일"이라며 "세계 최상층의 부가 아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백만장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억만장자가 나오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공적자본이 공공에서 민간으로 옮겨가고 있는 '민영화' 현상 또한 부의 편중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과 소득 불평등의 연관관계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피케티 교수는 "미국의 경우 상위 대학들은 기금을 통해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상당한 수입을 가져간다. 기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대학과 점점 격차가 커지고 대학 간 불평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고등교육에의 접근성, 어느 대학을 졸업하느냐에 따라 소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불평등 현상을 초고소득층에게 글로벌 부유세를 걷어서 해결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강연에서도 각 나라들의 세제변화의 흐름에 대해 언급하며, "민주적인 시스템을 통해 세제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사회 제도가 자본의 힘에 이미 영향을 받은 상황이라면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라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20세기 역사를 보면 1,2차 세계대전 등 충격적인 사건 이후 복지제도를 생각하게 됐고, 소득세·부자세·누진세 등이 등장하게 됐다"며 "과거 교훈으로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민주적 논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들을 검토, 재창조해야만 한다. 불평등에 맞서 싸우고 행동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피케티 교수는 '중국'을 언급하며 "자본의 축적과 분배가 세계화와 함께 맞물리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제도는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며 "최근 중국에서 재산세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아주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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