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4. 길원옥 '13세, 15세때 두번이나 속아 中 위안소로'
길원옥 할머니
1928년 오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길원옥(86)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평양에서 지내다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3살, 15살 두 차례 중국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현재 정대협이 운영하는 '평화의 집'에 사는 길 할머니는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UN) 인권최고대표 사무실에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당뇨와 합병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할머니는 본인이 시력도 좋고 귀도 밝은 편이라고 자부한다. 지난달 31일 할머니는 기자와 만나 일본 정부를 향해 이같이 말했다. "사람이니까 죄를 안 짓고 살 순 없다.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사과하고 인정해야 한다." #5. 김○○ '열여덟살에 일본 히로시마로 끌려가'
1926년에 태어나 열여덟 살에 일본 히로시마로 끌려가 5개월을 보냈던 김○○(88) 할머니. 서울 강서구에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쇠약해진 상태다. 낮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저녁에는 하릴없이 혼자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다리까지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대협 활동가들이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데, 오매불망 그들만 기다릴 정도로 정이 많다. 할머니는 과일을 손수 사다 놓기도 했다고. 활동가들이 올 때가 되면 "보고싶다. 언제 올거냐"며 정대협 사무실에 먼저 전화를 한다고 한다. #6. 김○○ '위안소서 비행기 폭격으로 청력 잃어'
1930년생인 김○○(84) 할머니는 경상남도에 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위안소로 끌려간 후 비행기 폭격으로 청력을 크게 잃었다. 2010년 경남 도ㆍ시ㆍ군의회의 위안부 결의문과 대국민 탄원엽서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종종 집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에 들러 차도 마시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랬다. 주민센터 직원은 "직원들 바뀐 것도 꿰고 있을 정도로 정정하시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겐 미국에 터를 잡은 딸이 하나 있다. 올해에도 미국에 있는 딸의 집에서 두 달간 있다가 지난달 딸과 동반 입국했다. 딸은 앞으로 1~2년간 할머니를 곁에서 보살필 계획이란다.※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기획 시리즈 진행 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명이 공식 인정돼 시리즈 제목을 '위안부 보고서 54'에서 '위안부 보고서 55'로 바꿉니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획취재팀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기획취재팀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기획취재팀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기획취재팀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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