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한 노약자나 임산부의 관람을 금합니다.' 공포 영화의 흔한 경고 문구는 그 원조가 '엑소시스트'(1973년)라고 주장 또는 짐작을 해본다. 천사 같은 소녀가 악마에 빙의되고 '신을 의심하는' 신부가 엑소시즘(퇴마술)으로 소녀를 치료한다는 설정이 드라마틱한 데다, 빙의된 소녀가 몸을 뒤집은 채 계단을 내려가고 모가지를 360도 돌리는 장면에서 적잖은 관객들이 까무러쳤으니 가히 '공포 영화의 바이블'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 영화를 이번 휴가에 숨죽이며 다시 보니 '역시 여름은 공포 영화의 시즌'이다. 우리가 여름에 공포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지극히 과학적이다. 무서운 장면을 보면 뇌가 반응하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그러면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혈관이 수축되며 식은땀이 흐른다. 근육이 움츠러들면서 온몸의 털도 곤두선다. 추운 날씨에 체온이 떨어졌을 때와 흡사한 현상이다. '몸이 옹송그려지고 털끝이 쭈뼛해질 정도로 아주 끔찍하다'는 사전적 의미의 '모골이 송연하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공포 영화가 올여름 자존심을 뭉갰다. 해마다 수십 편이 개봉되던 것과 달리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쪽박'의 길을 걷고 있으니 영화 내용이 아니라 영화 매출이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이에 대한 영화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렇다. '공포 영화의 소재가 식상하고 새로운 도전이 부재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면 바로 이것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공포스럽고 사람이 악마보다 더 무섭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포천 빌라 살인 사건' '윤 일병 사망 사건'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은 타락한 인간성이 핏빛으로 드러난 광기다. 남편과 애인의 사체를 고무통에 유기한 포천 여성의 잔혹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힘없는 후임 병사를 향한 집단의 광기는, 가출 여고생에게 가해진 고문의 살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공포 영화가 대수인가. 우리 삶 자체가 공포인 것을. 점잖은 체 하는 어른들은 책상을 치며 붕괴된 윤리를 개탄하지만, 실은 누가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정의와 염치와 인간성이 돈과 힘과 냉혹함에 무참히 살해된 이 사회의 비정함이 미필적 고의인 까닭이다. 도덕성을 상실해가는 우리 사회가 방조자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결말이 '악의 패배'이지만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악의 연속'이다. 심약한 국민들의 관람을 금할 수도 없다. 영화보다 무서운 '공포 현실'이다.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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