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복행(復行) (123)

오래전 인천에서 알았던 친구 중에 '복행'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다. 거꾸로 하면 '행복'인지라, 허물없이 자주 놀렸던 기억이 난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일어났던 비행기 사고와 관련해, 미국측 조사단(교통안전위원회라고 한다)은, 착륙 1.5초 전에 비행기가 '고 어라운드(go around)'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고 어라운드를 무엇으로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 말이 있었다. 우리 신문은 재이륙이라고 번역했고, 다른 석간들은 재상승이라고 풀었다. 이튿날 조간들도 갈렸다. 중앙은 재이륙이라고 한 반면, 딴 매체들은 모두 재상승이라고 했다. 이륙이란 비행기가 지상에서 떨어져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고, 상승은 그냥 뜨는 것을 의미한다. 재(再) 자가 붙으면 좀 복잡해진다. 내려가던 물체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재상승이나 재이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승하던 것이 다시 상승하는 것이 재상승이고 이륙하던 것이 다시 이륙하는 것이 재이륙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둘 다 어색한 표현이다. 이럴 경우, 비행 용어로는 복행(復行, 혹은 착륙복행)이라고 한다. 행로를 다시 뒤집는다는 의미인듯 하다. 블랙박스를 분석한 발표이기는 하나, 미국측에서는 기장의 비행 미숙이었다는 심증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1.5초 남기고 복행을 했으니,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참사의 순간을 들여다 보노라면 초 단위의 시간들이 자주 등장해, 저절로 숨가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우린 얼마나 긴 시간을 살고 있는가. 긴박했던 7월7일의 777기가 쪼개 썼던 시간들에 비하면 말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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