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 효율적 시장에 맡길 일, 따뜻한 사람에게 맡길 일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치약이 또 바뀐 것 같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은 하도 자주 바뀌어 정말 바뀌었는지 자신 없기도 하지만 치약의 성분과 효능까지 바뀌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치약의 본질과 상관없는 색깔, 치약 속의 띠(어떻게 넣었을까 항상 궁금하다), 뚜껑 모양, 몸체 디자인 등이 수시로 바뀐다. 슈퍼마켓의 세일 내용에 따라 아예 상표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제품의 수명 주기는 짧아지고 소비자의 상표 충성도는 낮아지는 것 같다.면도기도 그렇다. 옛날에는 면도기, 면도날의 대명사로 상표명이 쓰인 적이 있었다. 손잡이 끝을 돌려 면도기를 여닫고 넓적한 양날 면도날을 넣어 썼다. 요즘은 겹날로 시작해서 다섯 날의 면도기까지 나오고 있다. 면도날과 면도기를 연결하는 방식도 상표마다 죄 다르다. 면도날을 판매할 목적으로 면도기 증정 행사를 한다는데, 다음 번 면도날을 사야 할 즈음해서는 또 다른 상표의 면도기 증정 행사가 나오니 면도기를 또다시 얻게 된다. 결국 수납장 한편에는 쓰지 않은 빈 면도기만 즐비하게 쌓인다.싼 생활용품만 이런 것이 아니다. 핸드폰은 1~2년 쓰면 바꿔야 하는 소비재가 됐고, 제조사는 알파벳과 1, 2, 3등 숫자에 속도경쟁까지 더해 상품을 계속 변화시킨다. 자동차도 수시로 신규모델을 내놓고 기존모델에는 프리미엄이니 디럭스니 하는 수사를 붙여 이제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가 출시되고 있다. 심지어는 아파트도 브랜드명의 경쟁을 넘어 유행처럼 3베이, 4.5베이 등 관심 없는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공간배치 디자인을 내놓고 경쟁하고 있다.사람들의 원초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경제가 성숙되면서 한계시장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나아가서는 생산의 주체들이 제품 또는 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첨단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경쟁의 환경을 더욱 긴박하고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경쟁이라는 표현이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목가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며 오히려 전쟁터라고 칭하는 것이 피부에 더 와 닿는다.소비자 집단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하는 골치 아픈 측면도 있지만 효율성을 강제하는 시장경제의 기제로부터 생활의 편의성과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 그 이면에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우리가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경쟁의 승자가 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패자도 있다. 경쟁에서 낙오된 산업과 기업, 또 여기에 고용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되면 생산-소비의 선순환과정에서 배제되며 정상적인 삶이 어려워진다.개인의 존엄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두 가지 점에서 경쟁에서 처진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막연한 기업체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다니는 골목길의 아저씨, 아줌마 상점을 생각해보자. 이들의 실패는 나의 또는 우리의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잠재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경쟁의 낙오자일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시장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패자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이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확대 재생산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문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시장 기제의 작동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기능은 시장에 맡기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공공이 개입하는 형태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현상에 대한 책임을 시장경제에 돌리고 각종 규제로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옥죄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이럴 경우 효율성과 공정성을 모두 잃게 될 수 있으므로 우려가 크다.소소한 얘기를 시작으로 경쟁의 치열함을 논하다 보니 경쟁의 장점은 살리되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소소하지 않은 결론을 맺어 본다. 해결의 방법론으로 시장이 잘하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따뜻한 심장이 있는 사람이 잘하는 것은 사람에게 맡기자는 제안을 해본다.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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