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선ICT] '개똥녀'도 지우고 '차떼기'도 지워주세요?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기로에 섰다. 이동통신 보조금을 어떻게 조정할지,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할지, 인터넷 사용자의 '잊힐 권리'를 도입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인터넷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도 불씨가 여전하고, 국가안전재난망 구축 사업도 백가쟁명식 해법이 제기되고 있다. 모두가 ICT 산업의 경쟁력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때마침 미래창조과학부는 새로운 수장을 맞았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도 새로 꾸려졌다. 본지는 미방위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각계 전문가들의 고언 등을 통해 ICT 현안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시리즈> ①단말기유통법 보조금 상한선②인터넷 사용자의 '잊힐 권리' 논쟁③통신요금 인가제 찬반논란④망 중립성을 둘러싼 갈등⑤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어떻게 미방위 국회의원 18명 설문해보니10명 "사생활 보호 위해 삭제권리 인정"5명 "여론 통제·알 권리 제한으로 반대"3명 "부작용 없도록 균형적인 정책 필요"잊힐 권리, 악플 폐해 등 막을 수 있지만 여론통제에 악용될 수도[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조유진 기자] 인터넷 상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지울 수 있는 '잊힐 권리'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지난 5월 유럽사법재판소가 처음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지난달 우리나라 대법원이 망자의 이메일 등 디지털 유산의 처리 방안 연구에 들어가면서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는 관련 법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잊힐 권리는 어느 수준까지 허용이 돼야 할까.  본지가 8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소속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18명 중 10명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실이 아닌 부분은 지워져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5명은 "개방·공유라는 인터넷 정신에 어긋나고 알 권리를 제한할 수 있으므로 개인정보는 지우지 말아야 한다"고 반대했다. 나머지 3명은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두 가지를 모두 감안해 균형잡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개똥녀, 악플 폐해..잊힐 권리로 막아야 = 잊힐 권리를 허용하자는 측은 '사생활 보호'라는 이유를 들었다. 개똥녀 사건, 악플 연예인 자살사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리트윗을 거치며 허위사실 유포나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상의 정보 가운데 '사적인 정보'는 잊힐 권리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게 찬성 측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 사진은 사적 정보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재영 의원(새누리당)은 "공적인 사안이 아닌 경우 개인의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 하지만 잊힐 권리가 공적 영역에선 악용될 소지도 있다. 실제로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이후 한 정치인은 과거 자신의 부정적인 행적의 기사가 검색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구글에 요청해 파장이 이어졌다. 유니버셜, 워너비와 같은 대형 음반사들도 P2P 사이트의 링크를 지워달라고 구글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약자의 권익보다는 강자가 여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된 셈이다. 이 때문에 유럽사법재판소가 잊힐 권리를 과도하게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잊힐 권리는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도 있다. 검열의 그림자가 없는 인터넷 환경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는 뜻이다. 더욱이 국내 포털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블라인드 제도(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삭제 요청하면 해당 게시물이 일정 기간 동안 보이지 않게 하는 것)'를 도입했다. 여기에 잊힐 권리까지 이중으로 보장해주는 건 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법 제도화에 신중해야" =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은 잊힐 권리에 관해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용태 한국인터넷윤리학회장은 "잊힐 권리 인정에 부작용이 없도록 하려면 어디 수준까지 잊힐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일단은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 사생활 침해 정보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면 이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다시 점검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을 살펴보면 정보 주체자가 삭제를 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정보나 명예훼손, 음란물 등의 불법 정보 등이다.  정부도 잊힐 권리 도입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엄열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국내서도 관련 법규가 없지 않지만 법 적용을 좀 더 용이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 문제"라며 "현행 망법에 잊힐 권리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사업자의 입장과, 더 넓은 범위의 명문화된 규정이 필요하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맞붙고 있어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심나영 기자 sny@asiae.co.kr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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