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바주카포' 에도 유로 강세…정책 약발 다했나?

금리인하·마이너스 예금금리 조치에도 유로 뛰어…미국식 양적완화 나올 듯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유럽중앙은행(ECB)이 선진국 중앙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채택하는 등 획기적인 통화 완화 조치를 취했지만 유로화 강세를 꺾지 못했다.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이것이 ECB의 조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보여준다면서 결국 ECB가 미국식 양적완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로 가치를 끌어내리겠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딜 것으로 보인다.

▲유로·달러 환율

◇ECB 금리 인하에도 유로 뛰어=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CB가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 5일 유로는 1.366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 1.3599달러를 기록한 것에 비해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오히려 오른 것이다. 이날 유로는 엔화 대비로도 0.13% 올랐다. 유로는 다음날인 6일 소폭 내린 1.3643달러 선에서 움직였지만 ECB가 취한 '역사적인 정책'에 비해 하락폭이 미미했다. 이로써 유로는 지난 1주일 동안 0.1% 뛰었다. ECB의 경기부양책이 유로 강세를 꺾을 것이라던 시장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WSJ은 유로가 강세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에 돈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ECB의 금리인하 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급락세를 보였다. 채권 가격이 그만큼 뛴 것이다. 증시로도 투자금이 몰리면서 6일 Stoxx 유럽 500지수는 6년 반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로와 채권·주식이 동반 상승하는 더블 강세 현상을 보인 것이다. ◇시장 '실망'…ECB 위상 예전만 못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의 정책 발표 이후에도 유로 강세 기조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이 ECB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 때문인지 시장의 낮은 변동성으로 외환거래가 위축됐기 때문인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ECB의 정책 약발이 시장에 먹히는 수준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FT는 지적했다. ECB의 자산 감소 속도가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보다 가파른 것은 유럽 금융시장에서 ECB의 영향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ECB의 금리인하 조치는 이미 수차례 시장에 반영됐다.

▲핵심국·주변국 중소기업 대출금리 격차

유럽 자본시장이 미국 만큼 발전되지 않았고 유럽 은행들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국 은행들보다 큰 것을 감안하면 ECB의 금리 인하와 마이너스 예금금리 조치가 정작 유럽 금융권에 미칠 영향이 상징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WSJ은 2010년 1%였던 유로존 기준금리가 최근 0.15%까지 낮아졌지만 이 기간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주변국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오히려 더 높아진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인하의 혜택이 독일 등 선진국을 위주로 반영됐으며 낮은 금리에 따라 시중에 돈이 풀리는 효과 역시 국가별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ECB, 양적완화 만지작= ECB의 통화완화 정책의 핵심은 시장에 돈이 풀어 디플레이션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포함해 시장이 보내는 일련의 신호들을 종합하면 ECB의 이번 정책이 불러올 경기부양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결국 ECB가 미국식 양적완화의 카드를 꺼내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마리오 드라기 ECB총재가 5일 금리인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조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운을 뗀 것도 이를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회복에 따른 달러 강세와 ECB의 양적완화 조치 가능성 등에 따라 장기적으로 유로 약세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 영국계 헤지펀드 SLJ매크로파트너스의 스티븐 젠 외환부문 책임자는 "최근 유로의 움직임은 오래된 GPS(위성항법장치)가 일러준 대로 방향을 틀었는데 얘기치 않은 변수들을 만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서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유로는 점차 떨어지겠지만 이는 매우 천천히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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