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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새로 문을 연 사우나에 엄마가 두 딸을 데리고 들어선다. 주인이 큰 아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혹시 초등학생?"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답한다. "에이~ 유치원."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우물쭈물하던 큰 아이가 계산이 끝나자 나지막이 속삭인다. "엄마, 나 초등학생 맞잖아." 둘째도 나선다. "언니, 나랑 같은 유치원생이야?" 당황한 엄마가 눈을 흘기며 애먼 두 딸에게 화풀이다. "빨리 들어가기나 해!"장면 2. 얼마 전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한 가족이 주말 나들이로 한적한 시골을 찾았다. 우연히 마주친 동네 촌로가 묻는다. "어디서 오셨수?" 아빠와 아들이 동시에 입을 뗀다. "서울이요."(아빠) "경기도요."(아들) 촌 사람이 촌 구경 왔구나, 하고 생각할까봐 서울이라고 답한 아빠, 그런 아빠가 순간 낯설어진 아들. '아빠, 왜 그랬어'라고 묻는 듯한 아들의 시선을 피해 아빠는 먼 산만 쳐다볼 뿐.거짓말은 나이가 들수록 잘 익는다. 아이들은 아직 서툴다. 동화 속 피노키오나 양치기 소년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다. 거짓말을 경계하자면서 정작 어른들이 거짓말에 익숙하다. 거짓말 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에 따르면 사람들은 10분에 3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 1시간에 18번, 하루에 무려 432번. 너무 많다고 놀랄 건 없다. 대부분 작고 가볍고 착한 거짓말이다. 컨디션이 엉망인 동료에게 "오늘, 헤어스타일 좋다"고 칭찬하거나, 시험을 망친 아이에게 "그 정도도 잘했어"라고 위로하거나, 원수 같은 상사이지만 만나면 환하게 웃어주거나. 한번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라는 점에서 '사우나' 엄마나 '서울시' 아빠의 거짓말도 이 범주에 속한다. 소시민들의 작은 일탈이랄까. 문제는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나쁜 거짓말'이다.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짓말쇼가 한창이다. 일단 이기고 보자며 상대를 음해하고 모략하는 '입'들이 구린내를 풍긴다. 거짓말을 수습하려고 또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꾼이 권력을 잡은 결과가 세월호 참사다. 300명 넘는 생명을 속절없이 잃었는데도 증거 은폐와 사실 왜곡 시도가 여전히 설친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증인 채택을 놓고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가 멈춰 선 것을 보면 '성역 없는 조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도 거짓말이었나, 싶다. '아니야, 그럴리 없다'며 희생자 가족들은 고개를 흔든다. 그러면 모든 게 무너진다, 그러니 대통령의 약속은 절대 거짓말이어서는 안된다는 피끓는 심정으로 그들은 오늘도 진실을 촉구한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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