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후보 집중탐구]'친절한 원순씨 Ⅱ' 흥행야망

2년 7개월은 예고편이었다이화여대생과 미팅 나가려던서울법대 새내기가 19세 소년囚로검사·변호사·시민운동가였던 그에게서울공화국 수장은 '인생 大반전'원래 순둥이지만 원하는 건 순악질도 불사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일러스트=이영우 기자 20wo@]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2011년 10ㆍ26 재보궐선거는 '박원순'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가을에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그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박원순과 안철수'의 조합은 기성정치에 지쳐있던 이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발표한 그 해 9월6일 오후, 그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깎지도 않은 채였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도중에 결심을 하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당시만 해도 서울시장 후보 1순위는 단연 안철수였다. 박원순의 서울시장 도전은 낯설었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오히려 그를 옭아맸다. 하지만 막상 선거전에 돌입하자 '무상급식' 논란에 이어 '반값등록금' 논쟁을 선거 이슈로 만들면서 '정치인 박원순'은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기호 10번의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명함이 '서울시장 박원순'으로 바뀌던 날, 사무처장ㆍ상임이사ㆍ소셜 디자이너는 물론 애칭인 '박변'까지 그를 지칭했던 수식어는 자취를 감췄다.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기억도 잊혀졌다. '대통령은 안철수, 서울시장은 박원순'이라는 큰 꿈도 가까워지는 듯 했다.'서울시장은 행정가'라는 그의 생각은 현실과 달랐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그는 정치인 박원순의 굴레를 벗어나기 더욱 힘들어졌다. 시장으로서 임무와는 별도로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안철수 사람'이라는 그림자 밖으로 나오는 데에는 성공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 입성과 신당 창당, 민주당과의 합당 등을 거치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정치'는 다소 퇴색한 반면 박원순의 보폭은 커졌다.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정치적 무게감도 생겼다.그의 재선 도전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행정가든 정치인이든 서울시장을 2년 반에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시장 시절을 두고 '무난했다'는 평가와 '눈에 띌 만하게 해놓은 일이 없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행정가로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정치인으로서는 새로운 미래를 맞을 수도 있다. 6ㆍ4 지방선거에서 그의 새 도전에 서울시민이 응답할 차례다. 결과는 이제 6일이 남았다.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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