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라고? 지금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휴일근무를 하는 곳들이 허다한데 말이야. 참 내, 여기저기서 한목소리로 중소기업을 키우겠다면서 한쪽에선 문 닫을 정책을 내놓으면 어쩌자는 건지?"며칠 전 저녁 모임서 만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이 "중소기업 인력문제에 대한 기사 좀 써 달라"며 한탄한 말이다. 그는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데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경영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들이 다 문 닫아야 정신 차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옆에 있던 다른 중소 제조업체 사장도 "통상임금 판결에 이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한다는 판결까지 더해진다면 우리는 일시에 불법 현장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임금협상 시기는 다가오는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대법원의 근로시간 단축 판결 선고와 근로시간 단축 법제화를 놓고 중소기업계의 두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다음 달 예정된 대법원 선고에서 혹시라도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울상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의 경우 휴일특근, 야간할증률 등에 대한 협상이 가능하지만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노동집약적 산업 비중이 큰 중소기업들은 불법 휴일근로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위법을 하지 않으려면 인력 채용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 가뜩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채용에 나설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게 중소기업계의 호소다.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연일 대법원과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중소기업계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중소기업계의 우려대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당장 인건비가 오르게 돼 경영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우린 유예해 달라'고 읍소하는 중기업계를 보기가 편치만은 않다. 현재 한국은 주 40시간 근로를 기본으로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 주말 휴일근로 16시간이 가능해 주당 최대 68시간(연간 209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칠레 다음으로 3번째 긴 시간이다. 한국이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5위로 발돋움한 데 장시간 근로가 일정 부분 기여한 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과다한 근로시간이 일과 가정의 건강한 양립을 파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로시간 단축안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히든챔피언 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독일이 연간 1317시간을 일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제는 무조건 장시간 일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제대로 일해 생산성을 높이는 법을 찾아야 할 때다. 중소기업계도 근로시간 단축안 관련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유예해 달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 중소기업계의 고질병인 인재난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다.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로 인해 남들보다 최대 주당 16시간을 더 일해야 하는 곳에 일하겠다며 나설 청년 구직자는 많지 않다. 한쪽에선 근로시간을 줄이기 힘들다고 하면서, 또 다른 한쪽에선 우수 인재가 꺼린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지 않는가.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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