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끄러운 자화상 '안전하지 않은 나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째다. 바닷속 악조건 탓에 잠수요원들이 선체 진입에 거듭 실패하면서 인명구조가 계속 지연돼 온 국민을 안타깝게 한다. 이런 가운데 생존자들의 증언과 관계당국의 조사 등을 통해 사고 당시의 상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 내용은 배의 운항과 사고 시 대응의 모든 측면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천에서 출발할 당시에 이미 선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고 일부 생존 승객들은 주장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무리한 출항을 강행한 이유와 그에 대한 책임을 따져야 한다. 항로상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조타수 역할을 입사 4개월차의 20대 3등 항해사에게 맡겼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방향전환을 너무 급격하게 해서 배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하자 현장을 지휘해야 할 선장은 승객들은 내버려둔 채 저 혼자 살자고 서둘러 탈출했다. 무책임의 극치다.  사고 발생 후 뱃머리 일부 외에는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2시간가량 위기대응 매뉴얼은 있으나마나했다. 위기가 닥친 순간에 선내 안내방송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만을 되풀이 했다. 정확한 상황설명은 없었다. 이로 인해 승객들이 구조될 가능성이 높은 갑판 위로 올라가기보다 선실 안에 머물러 있다가 더 큰 위험에 빠졌다. 자동으로 작동하게 돼있는 마지막 대피도구인 구명벌(원형 구명보트)은 대부분 펼쳐지지 않았다. 비상상황에서 정부 관계 당국은 무능했고, 대응은 중구난방이었다. 안전을 최우선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표는 말뿐이었다.  '위기대비 및 사고대응을 위한 각종 매뉴얼은 미비하고, 그나마 있는 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번 사고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된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민주화를 실현한 뒤 선진국 문턱을 넘고 있다던 대한민국은 허상이었다. 기초가 허술하면 그 위에 쌓은 모든 것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무책임한 리더십까지 결합된 사회라면 그 구성원 중 누구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선체 속의 에어포켓에서 끈기 있게 버텨온 생존자들을 구해냈다는 낭보가 들려오길 기원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