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환대기자
▲영화 '록키 발보아' 중에서
꿈이 배반당하는 이유는 어려운 도전이 반드시 함께 하기 때문이다. 문경에게는 남성중심주의라는 인습이 꿈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연애할 때 "저 하늘의 별을 따줄게"라고 속삭인다. 아름다운 꿈의 약속이다. 그러나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별에 가기도 어렵지만 가도 다 타서 재도 안 남는다. 꿈은 본래 관념일 때 아름답지만 실행에 옮기면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도 도전은 지속된다.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이 노래를 듣고 또 꿈을 키운다.우리는 불나방처럼 꿈을 쫓는다. 구글에 '꿈'을 치면 4520만개의 웹페이지를 찾아낸다. '희망'은 2990만개가 나온다. 15일 기준으로 꿈이 1.5배나 많다. 현실적인 희망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더 큰 꿈을 쫓는다. 영어로 검색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꿈인 'dream'(3억6100만개)보다 희망인 'hope'(5억400만개)가 훨씬 많다. 이 분석 아주 정확하다. 빅데이터를 조사하는 사람들은 '구글신'이라 부른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우리나라의 지난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확성이 입증됐다. 투표 전날 검색된 후보들의 웹페이지 비율이 득표율과 유사했다. 지방선거 유력후보들을 검색해 보라. 놀라게 된다.우리가 이처럼 꿈꾸길 좋아하는 이유를 짐작해 본다. 꿈을 이뤄봤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이란 벽을 넘어봤다. 2차 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했다. 아무도 못 이룬 꿈을 우리가 이뤄냈다. 가난과 독재를 이겨냈다. '꿈은 헛되다'보다는 '꿈은 이루어진다'가 익숙하다. 40대부터 60대 중반의 신(新)중년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꿈을 현실로 만든 경험을 공유한다. 손을 맞잡고 해냈다. 젊은이들의 어려움도 손을 잡고 극복해 낼 수 있다고 꿈꿔 본다.친구들의 헛헛한 술자리 대화는 꿈이라기보다 자그마한 희망이다. 함께하는 공동체의 꿈, 우리들의 꿈은 이뤄봤다. 개인으로 돌아와 보면 사정이 다르다. 근데 내 꿈은 뭐였더라. 이제 꿈은 포기하고 자그마한 희망에 만족해야 하나. 늙었나.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린이에게 영화는 미래를 향한 꿈이다. 어른이 되면 같은 영화도 과거를 되새기는 추억이 된다. 신 중년이 꿈꾸지 못하고 추억만을 새겨야 할 나이인가.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살날이 남아도 너무 많이 남았다.중년은 이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다. 새해를 시작하는 1월(January)이 야누스(Janus)에서 나왔다. 한 쪽 얼굴로 과거를 보며 추억을 새기고 반성도 할 수 있다. 다른 한 쪽 얼굴로 미래를 바라보는 어린애처럼 꿈을 꿀 수 있다. 중년의 꿈은 출세를 의미하는 청운의 꿈, 어린아이의 대통령 꿈과는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소중한 꿈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인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그대 아직도 꿈꿀 수 있는가?"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