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 국립축산과학원 동물유전체과장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가 유전자 진단을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암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선택했다. 이 뉴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여배우는 수술을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서 5%로 낮아졌다. 유전체 해독을 통한 유전자 진단법이 개발되면서 치료 중심의 의료행위가 유전자 정보에 근거한 예방 중심의 의학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 유전체 정보 해독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유전체(genome)는 각 생물종이 생명을 유지하고 모든 형질을 발현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세트이다. 1953년 왓슨과 클릭에 의해 생물종이 가지고 있는 유전물질인 DNA의 구조가 밝혀졌다. 1990년 시작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3년 동안 약 3조원이란 천문학적 연구비를 투입해 2003년에 완성됐다. 최근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저렴하면서 신속하게 유전체 해독이 가능해졌다. 이후 많은 지구상의 생물종들에 대한 유전체 정보 해독이 진행되고 있다. 2014년 3월 말 현재 유전체 해독이 완료된 것은 1만8850개이다. 진행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4만1453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전체 해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등 6개 부ㆍ청이 공동으로 올해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총 5788억원의 연구비를 투입, 포스트게놈 다부처 유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다부처 유전체 사업은 산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다양한 생물종에 대한 유전체 정보의 확보와 고도화를 통해 의료, 신소재, 식량자원, 에너지 등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지난 3월 초 '포스트게놈 다부처 유전체사업' 추진을 위한 출범식을 갖고 농생명자원 분야 유전체 정보 해독 사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8년 동안 668억여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들깨, 고구마, 양파 등 작물뿐만 아니라 오골계, 제주마, 진도개 등 우리나라 토종가축 등 40여품목의 농생물종에 대한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고 산업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유전체 정보의 고도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다양한 농업생물자원의 유전체 정보의 확보는 생물 신소재의 발굴은 물론 미래의 식량 안보, 기후 변화, 에너지 부족 등 예측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축산분야의 다부처 유전체 사업은 1단계로 올해부터 2017년도까지 4년 동안 오골계, 제주마, 진돗개, 토종오리 등 4개 토종 가축에 대해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게 된다. 과거 소나 돼지, 닭 등의 가축에 대해서는 이미 외국품종의 유전체 해독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토종 가축의 유전체를 해독하면 토종 가축들의 가축화 과정, 즉 진화적 측면에서 토착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축산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 악성 전염병 및 각종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구명을 통한 질병 저항성 가축 육성, 특정 면역물질을 함유한 기능성 축산물의 생산 등과 관련된 기술 개발을 위한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 진단을 통해 우량 가축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기대된다. 다부처 유전체 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됨에 따라 우리나라 고유자원인 토종가축에 대한 비밀이 풀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 가축 유전자원들에 대한 비밀이 하나 둘씩 풀리면 미래엔 소비자가 원하는 고기를 마음대로 골라 주문할 수 있는 시대도 올 수 있을 것이다. 김태헌 국립축산과학원 동물유전체과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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