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금녀(禁女)의 벽, 얼마나 높길래?'

R&A, 260년 빗장푸나? 미국 20여곳, 국내에도 3곳이나 '금녀골프장'

여성회원의 입회 허용 여부를 투표에 부치기로 한 세인트앤드루스의 R&A 골프클럽.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미국 워싱턴DC 근교인 메릴랜드주 베네스다의 버닝트리(Burning Tree)골프장.아이젠하워와 케네디, 부시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이다. 극소수의 명사들만 회원, 일반인들은 당연히 출입조차 쉽지 않다. 바로 이곳에 여성을 동반한 골프 일행이 들어섰다. 이 여성은 그러나 "남장을 하면 플레이할 수 있지 모르겠다"는 매니저의 농담과 함께 클럽하우스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본지에 골프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김맹녕 씨의 일화다. ▲ R&A "여성입회 허용?"= 지구상에 여전히 여성 입회는 물론 출입조차 금하는 골프장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지난주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로열에이션트(R&A) 골프클럽은 "오는 9월 회원 2500명을 대상으로 여성회원 입회 허용 여부를 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1754년 설립돼 무려 26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이다. 전 세계 저명인사가 회원, 한국인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단 2명뿐이다. 회원제로 출발해 영국왕실로부터 '로열'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지금은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지구촌 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피터 도슨 R&A 회장은 "시대가 변했고, 이제는 여성회원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2012년 '마스터스 개최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이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달라 무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재정전문가를 첫 여성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80년간 고수해 온 '금녀(禁女)의 벽'이 무너졌다. 1990년에서야 흑인 입회를 허용했을 정도로 역시 보수적인 곳이다. ▲ "시대가 변했다?"= 오거스타내셔널이 무너진 결정적인 계기는 마스터스의 오랜 후원사인 IBM 최고경영자(CEO)의 자동 회원 입회 논란이 출발점이다. 대회를 앞두고 관례에 따라 버지니아 로메티 CEO에게 회원자격을 줘야 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로메티는 끝내 마스터스 외빈 환영식에 회원이 입는 '그린재킷'을 입지 못한 채 참석해야 했다. 시민단체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까지 가세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동안 여성의 입회 허용을 강력히 요구해온 진보 진영의 거센 항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스폰서의 힘에 굴복한 셈이다. '최고(最古)의 메이저' 디오픈을 주관하는 R&A 역시 여성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 스폰서들이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여성회원 입회를 허용해 80년간 고수해 온 '금녀(禁女)의 벽'이 무너진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br />

▲ "그래도 여성 입회금지?"= 여성회원 가입이 불가능한 곳은 아직도 미국에서만 20여곳이 남아있다. 물론 버닝트리처럼 라운드 자체를 금지하는 곳은 드물다. 세인트앤드루스는 한동안 "개와 여성(No dogs or women allowed) 출입금지"라는 팻말로 논란이 됐지만 2007년 브리티시여자오픈을 계기로 지금은 모두 해제된 상태다. 아일랜드 포트마녹의 악명이 가장 높다. 1894년에 창립돼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아일랜드 지방법원이 2004년 '골프는 남녀가 함께 즐기는 스포츠'라며 여성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즉각 대법원에 항소해 '특별 성만을 가진 자들이 문화를 즐기는 곳'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해 디오픈이 열렸던 뮤어필드와 미국 일리노이주 버틀러내셔널, 텍사스주 로킨버 등은 여전히 '금녀(禁女)' 골프장이다. 국내에서는 골드와 코리아, 한성이 여성 정회원을 받지 않는다. 소위 '블루칩'으로 불리는 일부 초고가 골프장도 여성이 입회할 때는 기존 회원들에게 찬반을 묻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아예 여성회원권을 따로 발급해 관리하는 곳도 많다. 여성회원의 입회를 제한하려는 의도에서 만든 차별의 합리화다. 김포시사이드와 남서울, 뉴코리아, 부산, 동래베네스트 등이다. 유통 물량이 적어 시세가 오히려 높다는 게 아이러니다.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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