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일할 맛 잃은 회계사들

윤현철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최근 회계감사와 관련된 세간의 이슈로 회계사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따갑다. 침묵이 금이고 시간은 약이라지만 하도 억울한 측면이 있어 사정을 피력해 본다. 부실감사로 오해 받는 포휴먼의 경우다.  1심 재판에서 회사가 회계사를 교묘하게 속인 것은 인정되나, 속음에 과실이 있다 하여 회계사가 거액의 손해배상을 하게 된 사건이다. 회사는 조작된 가공매출을 허위로 입증하기 위해 관세청에서만 발급되는 수출신고필증을 위조했고, 건물의 간판을 갈아끼며 가짜 직원이 마치 수입처의 사장인 것처럼 행세해 회계사를 속였다.  전문 회계사가 속은 것은 수사권이 없어서다. 회계감사기준에서 포휴먼 같은 회사는 극히 예외적이므로 회계감사는 '성선설'에 입각하라고 돼 있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고 선량한 기업에 부담이 없다. 검사처럼 '성악설'에 근거하여 수사하라 했다면 속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성선설의 전제가 무너진 경우는 회계사를 면책해줌이 공평하다. 그런데도 연일 회계사만 매도된다.  날치기범을 잡기보다는 은행 가는 길에 봉변 당한 힘 약한 여직원의 변상 여부만 부각되는 형국이다. 속인 자는 덮고, 속은 자만 남아 단죄된다. 속은 것이 죄라면 회계사에 준수사권을 주던지, 사회적 역기능이 부담되면 감사위원회가 회계사 편에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면 된다. 아니면 감사를 방해하는 자는 미국처럼 징역 25년쯤 부과해 분식의 근원을 차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국제 회계기준과 감사기준들을 도입하면서도 인프라가 되는 이런 제도들은 외면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회계사들은 삼청교육대에서 목봉 체조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한다. 감사시즌에 새벽까지 서너 달 일하다 보면 거대한 목봉의 무게는 어깨를 짓눌러 오고 낙오병은 점차 늘어난다. 남아 버티는 자들마저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지 본인조차 가늠할 수 없다.  국제 회계기준과 연결재무제표, 국제 감사기준의 도입으로 목봉의 무게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일 할 수 있는 시간은 결산기의 집중과 공시기한의 단축으로 오히려 줄었다. 여기에 퇴사 인원으로 목봉을 같이 들고 있을 일손은 크게 부족하다. 회사의 결산 능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이를 다그칠 회계사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던 아파트 감사 보수는 수십만원대로 추락했다. 부실감사로 수백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과는 극명하게 비교된다.  이렇듯 무력한 감사인을 만들어 놓고도 선진국의 힘 있는 감사인만이 가능한 회사와의 유착을 걱정하며 감사인 강제 교체제도와 용역업무의 수임 금지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시기상조다. 감사인이 마음에 안 들면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제도하에서는 압박은 있어도 유착은 없다. 유착은 힘부터 키워 놓고 걱정할 일이다.  새로운 타개책으로 감사인의 강제 배정이 논의된다. 효과는 매우 크겠지만 장기적으로 능사는 아니다. 경쟁이 실종되면 회계사 업계의 발전이 없고 회계 선진화는 요원하다. 관건은 감사를 잘해야 인기가 있는 경쟁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방편으로 유명무실한 감사위원회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힘센 감사위원회가 회사에서 독립돼 양질의 감사인을 고용한다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는 있다.  선진국에서는 경영자와 독립되고 힘센 감사위원회가 회사와의 완충역할을 맡아 감사인에게 힘을 나눠준다. 감사인은 회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위원회가 정하고, 이들의 책임은 회사의 부정과 분식을 감시하는 것이다. 보수가 다소 높아도 당연히 감사를 가장 잘하는 감사인을 선정한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감사인일수록 회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감사 품질은 저절로 높아진다.  힘 없는 감사인을 강제로 교체하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감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서 감사인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방안을 강구함이 옳다. 회계사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은 소신껏 감사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다음에 해야 정의롭다.윤현철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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