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재판을 잘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당사자 승복을 잘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일 퇴임한 차한성 대법관은 대법원을 떠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당사자 승복을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사자 승복을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판결을 수용하기에 앞서 자신이 왜 그러한 판결을 받았는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문제는 판결문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몇번을 읽어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법률용어 자체가 일반인에게 생소하다는 점도 이해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예를 들어 ‘선의’와 ‘악의’라는 용어가 있다. 선의는 일반적으로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법률용어로 선의는 ‘어떤 일에 대한 법률관계의 사정이나 사실을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 법률용어로 악의는 ‘어떤 사정을 알고 있는 일’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쓰임과는 전혀 다른 법률용어는 일반인에게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판결문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는 지적도 무리는 아니다. 어려운 법률용어가 문제의 본질일까.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진짜 문제는 일반인은 쓰지 않는 ‘낯선 한글’이 판결문에 사용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사 피고가 불상의 방법으로 기망해 경락을 경료했다고 해도’라는 판결문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가령 피고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속여 매각을 마쳤다고 해도’라는 내용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쓸 수도 있다. 판사들은 왜 쉬운 문장을 어렵게 쓸까. 판결문을 어렵게 느끼게 하는 원인은 또 있다. 판결문에는 만연체 문장이 가득하다. 최근 언론에 보도됐던 판결문 가운데 하나를 임의로 골라 한 문장의 글자 수를 세어봤다. 한 문장이 700자, 원고지 3.5매 분량이나 됐다. 해당 문장이 특별히 긴 문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부 판결문에는 한 문장이 1000자를 훌쩍 넘어 수천자에 이르는 문장도 담겨 있다. 이쯤 되면 주어가 무엇인지, 술어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법원도 판결문에 담긴 문장의 군살을 빼고 짧게 쓰는 게 국민 이해도를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법원도서관이 ‘법원맞춤법 자료집’까지 내면서 판결문의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문의 잘못된 관행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한문 형식의 문어체와 일본식 표현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판결문을 어렵게 쓴다고 판사 권위가 높아질까. 어려운 판결문은 시대에 동떨어진 법원, 변화를 거부하는 법원을 상징할 뿐이다. 이는 법원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국민소통’과도 거리가 먼 모습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그 진정성이 국민 여러분의 마음 깊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말보다는 실천이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올해를 ‘쉬운 판결문 정착의 해’로 삼는 것은 어떨까. 법원에서 내놓는 판결문이 신문 기사보다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변화의 진정성은 자연스럽게 인정받지 않겠는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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