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힘든데 AI까지'…설이 괴로운 치킨집 사장님들

서울 지역 치킨집 6000개 육박, 설 연휴로 매출 주는데 AI까지 겹쳐 '울상'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 박현오(가명·54)씨는 25년동안 다녀 온 중소기업이 문을 닫게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박씨는 지난 10월 부인과 함께 서울의 한 대학 앞에 치킨 프랜차이즈점을 열었다. 배달사원도 2명이나 고용했지만 두달 후 걸어서 3분 거리에 또 다른 치킨집이 들어서면서 생각만큼 매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겨울방학 시작과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하면서 손님의 발길은 뚝 끊겼다. 요즘은 하루 평균 배달주문이 3건도 채 들어오지 않는다. 남들은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지만 박씨는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연휴까지 겹치면서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치킨집 사장님들의 시름이 깊다. 휴일 때문에 매상이 빠지는 건 둘째치고 조류인플루엔자(AI)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는 AI에 걸린 오리나 닭이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음식으로 가공해 섭취하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치킨집의 이 같은 불안감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점포로 인한 과열 경쟁도 한 몫하고 있다. 31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 시내에서 영업 중인 치킨전문점은 총 5960곳에 달한다. 2007년 4137곳, 2008년 4266곳 2009년 4642곳을 기록하다 2010년에 접어들며 5000곳을 돌파했다. 2010년 5114곳, 2011년 5332곳, 2012년 5544곳 등 꾸준히 5000곳 이상이 영업 중에 있다. 치킨집은 지난 6년간 44.1%나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엔 6000곳 돌파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폐업을 신고하는 가게도 매년 400곳에 달한다. 2011년엔 495곳이 문을 닫았고 2012년 410곳, 2013년엔 366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폐업하는 치킨집이 수백 곳에 달해도 새로 문을 여는 곳이 더 많기 때문에 과열 경쟁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치킨집은 471곳. 2011년 546곳, 2012년엔 672곳이 치킨집 간판을 달았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치킨전문점은 최근 10년간 매년 7000개가 창업해 5000개가 휴·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명 중 4명은 10년 이내 사업을 접고 절반은 3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국내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2000년 6.9kg에서 2005년 소고기 소비량을 초월했고 201년 기준 11.4kg까지 증가했다. 외식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내 치킨시장도 최근 10년간 3300억원에서 3조원대로 9배가량 커졌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하고 은퇴세대의 프랜차이즈 점포 창업 증가와 맞물리면서 공급도 함께 늘면서 기존에 장사를 하던 가게도, 새롭게 문을 연 곳도 모두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 전문점을 운영하는 양정호(가명·36)씨는 "그나마 경기를 덜 타고 안정적인 매출이 나올 것 같아 장사를 시작했는데 월 수입이 100만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며 "주변에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AI 변수가 생길 경우 사실 관계와 관계없이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상권이 많은 만큼 창업 전 시장상황과 수요 등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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