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노동자회 2013년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사례집 펴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맞벌이의 증가 등 여성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성희롱ㆍ폭언 폭행ㆍ부당노동행위ㆍ성차별ㆍ모성권 침해 등 차별 행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스마트폰을 이용한 성희롱이나 출산 육아 휴직 등 모성권 보호에 대한 상담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난해 전국 10개 지역 평등의전화(고용평등상담실)에서 상담한 사례를 분석한 '2013 평등의전화 상담 사례집'을 펴냈다. 사례집에 따르면 2012년 12월1일부터 2013년11월30일까지 평등의전화에 접수된 상담 사례는 여성 2643건, 남성 151건 등 총 2794건이었다. 지난해 접수된 상담의 가장 큰 특징은 근로조건 관련 상담이 많이 줄고 모성권 보장에 관한 상담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임금체불ㆍ해고ㆍ부당행위 등 근로조건에 관한 상담이 43.7%(1154건)으로 여전히 1위였지만, 10년 전인 2003년 당시의 비중(1628건ㆍ58.6%)보다는 많이 낮아졌다. 반면 육아ㆍ출산휴가 등 모성권 보장에 관한 상담이 1129건(42.7%)이나 돼 2003년 13.6%(379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어 성차별 87건 3.3%, 성희롱 236건으로 8.9%, 폭언 폭행 62건 1.4% 등이었다. 이에 대해 여성노동자회는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된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이 사업장에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담 유형 별로는 출산 휴가(502건ㆍ19.0건), 육아휴직(432건ㆍ16.3건), 임금체불 413건(15.6%) 등의 순이었다. 구체적인 상담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황당'한 대우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A(31ㆍ여)씨는 최근 회의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결혼 계획을 밝혔다가 원장으로부터 "신혼 여행도 가야 되니까 그만 두라"는 말을 들었다. 이 어린이집에서 2년 넘게 근무했던 A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A씨는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에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상담 전화를 걸었다. 20명 안팎의 직원들이 있는 제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B(40대ㆍ여)씨는 작업 시간에 화장실만 갖다 오면 시간을 재고 있다가 보여주는 반장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그것도 같이 일하는 다른 직원들 모두에게 그러는 것이 아니라 B씨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에게만 유독 그런다. B씨는 여성노동자회에 전화를 걸어 "이런 부당 행위에 대해 어떻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냐"며 도움을 호소했다. 전북 모 복지원에 입사한 C(31세ㆍ여)씨는 복지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원장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최근에는 다른 사람과 업무를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명령 불복종으로 해고하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경기도 인산의 한 사무직 여성 노동자는 출산 6개월여를 앞뒀을 때 사장으로부터 "임신해서 배가 나와 일하면 안 된다. 그만 둬라. 다른 사람이 보기 좋지 않다"며 해고를 통보 받았다. 아직 크게 배가 나오지 않았으니 두 달만 더 일하게 해달라고, 실업 급여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근 들어 일부에서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육아 휴직도 일반적인 여성 노동자들에게선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지난해 7월 대구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에는 출산 휴가ㆍ육아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려 했더니 대체인력을 고용했다며 사표를 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는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이 여성은 "회사 쪽에서 출근을 하면 자발적으로 퇴사하게 만들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육아 휴직 중에 사전 통보 없이 퇴사 당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인천여성노동자회에는 "육아 휴직을 할 때 회사에서 3개월만 쉬고 오라고 했는데 6개월로 신청서를 내고 쉬었더니 얼마 후에 집에 지역건강보험증이 날아 와서 퇴직 처리된 것을 알게 됐다. 황당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해 5월 마산ㆍ창원에선 출산 휴가가 끝난 후 출근 하려고 하니 멀쩡하게 오던 통근 버스가 갑자기 오지 않는 식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이 여성은 "왜 안 오냐고 물었더니 노선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며 자가 운전을 하던지 알아서 오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고 호소해왔다. 이와 함께 성희롱 상담의 경우 '성관계 가져봤냐, 최근 언제까지 성관계 했냐', '임신 언제 하냐? 술이 비었다, 옆에 앉아라', '가슴이 크다. 확인 시켜 달라', '안아 달라. 뽀뽀 하자', '엉덩이가 너무 섹시한데', '오늘 나랑 자자' 등 언어를 통한 성희롱 사례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엉덩이나 허벅지 만지기, 업무지시를 하면서 몸을 밀착시켜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가슴 만지기, 강제로 손잡기, 무릎 쓰다듬기, 여성의 중요한 부위까지 만지는 과도한 신체접촉도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스마트폰을 이용한 성희롱을 호소하는 상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사장이 스마트폰을 장만해서 사용 방법을 알려줬더니 그 날부터 음란 동영상을 보내왔다,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여주겠다며 메신저로 음란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줬다 등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기타 성희롱으로는 직장 상사가 지나치게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사내 연애를 하고 있는데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경우, 출근할 때 태워준 사람과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 회사를 그만 두는 경우 등이 있었다.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성희롱 사례도 최근 눈에 띄게 상담이 늘어났다. 인천의 한 요양보호사는 환자가 자꾸 가슴과 엉덩이를 만져 하지 말라고 항의를 하자 "너도 기저귀 갈면서 (내 것을) 만지지 않냐"는 답변을 듣고 황당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상담을 해왔다. 또 다른 한 요양보호사도 치매환자 재가 서비스를 나가서 환자로부터 "뽀뽀해달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해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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