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구문(舊聞)처럼 들리는 유럽 재정위기는 휴화산(休火山)이다. 미국의 테이퍼링 이슈에 밀려 한동안 거론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 파괴력을 갖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시장의 예상을 뒤집으면서 지난해 11월 깜짝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를 0.50%에서 0.25%로 낮춰 급격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맞서겠다고 공언했다. ECB가 독일 등 역내 주요국의 반대 속에서도 금리를 내려잡아야 할 만큼 상황은 긴박했다. 지난해 7월 1.6%였던 유로존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8월 1.3%에서 9월 1.1%, 10월에는 0.7%까지 떨어졌다. ECB의 금리 인하로 유럽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0.25%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질적인 수요 확대나 디플레이션 방어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2분기와 3분기 고용 감소세 둔화와 소비심리 개선 등으로 가계소비가 소폭 늘었지만, 고용시장 회복세가 더딘데다 조세 부담이 늘어 내수 회복에 제약을 받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남유럽의 부채디플레이션 가능성도 상존해 유럽 재정위기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부채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으로 실질금리가 상승해 부채 상환 부담이 늘면, 대출자들이 주택 등 자산을 던져 물가 하락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말한다. 북유럽에선 ECB의 금리 인하 효과가 고루 나타나지만, 재정 문제가 심각한 남유럽은 시스템 자체가 고장나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은행권은 리스크 회피 심리와 자본 부족으로 대출을 꺼리고, 시장의 자금 수요도 충분치 않다. 지난해 9월 현재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는 0.64로 유로존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는 물가와 GDP갭, 자산가격 변화, 환율 효과 등 11개 변수의 추이를 지수화한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준을 따라 계산한다. 이렇게 남유럽의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이에 따른 부채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경우 남유럽 정부의 부채 규모 축소 시점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지만, 일단 남유럽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경우 유럽 재정위기는 도미노처럼 확산될 것이라는 게 국제 금융가의 분석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올해 금융시장에는 다시 한 번 광풍이 몰아칠 수 있다.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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