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얼마 전 모처럼 만난 대학 동문들과의 대화는 그리 유쾌하지 않게 진행됐다. 우리 사회 안팎에서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한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더니, 다짜고짜 "도대체 우리나라 기자들은, 언론들은 도대체 왜 그 모양이냐?"는 지적들이 날아왔다. 이제 한국 언론의 보도는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됐다는 한탄도 섞여 있었다. "기자로서 너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냐"는 질책은 사납게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열심히 변명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구차했다. 언론사들도 기업인데 먹고 살길은 찾아야 하지 않겠냐, 광고주들의 비위에 거슬렸다가는 당장 매출에 지장이 있다는 하나마나한 한심한 소리였다. 어쩌다 언론사 기자라는 직업이 이렇게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되었던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언론의 이같은 비참한 현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본적인 사명과 역할을 무시한 채 오로지 달콤한 꿀만 즐기려는 이들이 언론계의 대세가 된 건 이미 오래 전 일 아닌가? 요즘 한창 진행 중인 철도 파업 보도, 송전탑 건설 갈등 등에 대한 보도만 봐도 그렇다. 외눈박이 거인처럼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깊은 생각없이 떠들어대는 보도로 인해 사실 관계가 왜곡되고, 당사자들이 오해를 받아 괴로워하고, 종국엔 잘못된 보도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한 선택을 하는 이들마저 생기고 있다. 특히 진보-보수 등 이념의 차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선정적이고 기본을 망각한 보도들이 지면과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 언론사의 사시나 편집 철학, 정치적 소신 등이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왜 갈등이 파생됐는지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해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들은 간데없이, 한쪽에선 '종북 좌빨 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대안없는 편들기식 보도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러니 언론들을 보는 국민들의 눈이 그렇게 차가울 수밖에. 요즘은 중학생들도 "도무지 신문ㆍ방송을 못 믿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한다. 최근 만난 한 학부모로부터는 "우리나라 기자들은 다 소설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언론사 시험 준비생이던 시절의 '기자'라면 정의감이 투철하고, 온갖 비리와 잘못에 절대 눈감지 않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며, 불의에 당당히 맞설 줄 아는 이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던가? 당장 필자만 하더라도 귀찮은 일 벌어질까 두려워서, 게을러서, 회사에 좋은 일이니까 등등 온갖 이유로 적당히 타협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려대생 주현우씨의 대자보 글을 인용해 기자 선후배 여러분들께 다만 묻고 싶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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