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써온 우편 집배원들도 못 외운다...'전면 시행 유보' 또는 '병행 사용' 목소리 높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도로명주소 전면 시행, 우편번호 변경 등 새 주소 개편 작업이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가운데, 도로명주소에 큰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물류 현장에서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택배ㆍ탁송ㆍ쇼핑몰ㆍ수출입 업체 등에선 벌써부터 혼란이 벌어지면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로명주소 시행 전면 유보 또는 옛 주소 병행 사용 등으로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지번주소 대신 도로명주소를 전면 사용한다. 즉 새해부터는 도로명주소가 공공기관에 전입ㆍ출생ㆍ혼인신고 등 각종 신청이나 서류를 제출할 때 사용하는 법정 주소가 된다는 얘기다. 단 부동산 표시에는 기존의 지번 주소가 그대로 사용된다. 정부는 또 현행 6자리인 우편번호를 오는 2015년 8월부터 5자리로 전면 개편해 사용할 계획이다. 내달 1일부터 사용되는 전국의 도로명주소에 맞춰 일단 새 우편번호 내역을 공고한 후 최종 새 우편번호는 내년 말까지 확정한다. 그러나 물류 현장에선 도로명주소 체계가 심각한 결함이 있어 본격적으로 사용될 경우 '영구적 난제'에 부딪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로명주소 체계가 전체를 통괄하는 구성 원리 없이 부분 원리(도로명+건물 번호)로만 구성되다 보니 일선 물류 현장에서 자신의 담당 구역의 주소를 숙지하려면 도로명주소와 물리적 위치를 아예 통째로 외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지번식 주소는 한글처럼 원리만 알면 지형지물을 이용해 찾아갈 수 있었지만, 도로명주소는 한자처럼 도로명을 통째로 알아야 해 새 주소 체계의 필수조건인 '방문 용이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실제 우편 집배원들은 3년째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담당 구역 내 최소 100여개의 도로명 주소를 외우지 못해 일일이 지도를 찾아 봐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일례로 종로구에 위치한 서촌 마을의 경우 기존 18개의 동명만 외우면 됐는데, 도로명으로 바뀐 뒤에는 50개나 되는 도로명을 다 외워야 한다. 전국의 도로명은 총 16만3184개이며 서울에는 1만4681개가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 한 우편 집배원은 "기존 지번 주소는 보통 1개 구역당 1주일 정도면 현장 숙지가 끝났는데, 도로명 주소는 3년이 지나도 다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 주소 체계는 도로명을 갖고 해당 도로에 가서 좌측 건물은 홀수 번호, 우측 건물은 짝수 번호 식으로 찾는 식인데 이는 부분 원리에 불과해 한 곳의 주소만 알아도 다른 곳을 연계해서 추측해 낼 수 있는 전체 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미 도로명주소 시안이 나왔던 2000년대 초반부터 지적돼 왔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해 세분화됐던 도로명을 큰 도로 중심으로 통합해 작은 길은 큰 길 이름 옆에 번호를 매겨 구분하는 방식으로 명칭 부여 체계를 바꾸는 등 보완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보완 이후에도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은 데다 공간적 연계성 없이 대로변 골목길에 번호를 매긴 것에 불과해 찾아가는 사람 입장에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도로명주소의 문제점과 낮은 인지도ㆍ활용도 때문에 경제 현장에선 도로명주소 때문에 벌써부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물류 관련 업계에선 도로명주소에 익숙치 않은 탓에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모(41)씨는 최근 주소가 잘못 돼 반송되는 물건들이 늘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왜 아직 물건이 안 오냐"는 항의를 받고 확인해 보면 대부분 도로명주소로 표시된 것들이다. 김씨는 "택배기사들이 도로명주소로 표시된 물건들은 대부분 제대로 주소를 찾아가지 못한 채 반송해 오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사람 자체가 적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내년부터 전면 사용될 경우 돌아오는 물건들이 늘어나 매출에 차질을 빚을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법인간 거래를 하면서 각종 인증서ㆍ세금계산서 등을 발급하는 경우 상대방의 변경된 주소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은 "정부는 물리적으로 준비가 끝났다며 전면 시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 이는 국민은 그저 따라오면 된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실질적 시행 시기와 과정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새 주소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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