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공공기관의 각종 안전 관련 기준치, 신뢰도 하락…전문가들 '관리 편의 위주 기준치 믿지 마라' 권고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 이모(39)씨는 요즘 식품이나 물건을 살 때마다 품질뿐만 아니라 '기준치'를 꼼꼼히 따진다. 생선은 일본 방사능 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예 고르지 않는다.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들어 있지는 않는지, TV나 전자제품을 살 때는 전자파가 기준치를 넘지 않는지, 각종 식품들은 영양소가 기준치를 충족하는지, 가구 등을 살 때는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는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이씨는 "하도 위험하다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라 신문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오는 각종 안전 기준치를 메모해두고 물건 살 때 참고하는 것은 필수"라며 "최소한 전문가들이나 국가기관이 제시한 기준치 이하면 믿을 만하고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정부나 공공기관 등에서 제시한 각종 안전 관련 '기준치'를 신뢰하면서 식품ㆍ소비재 등에 대한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각종 환경ㆍ방사능 오염 문제 등이 심해지면서 성역처럼 여겨졌던 '기준치'의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식품 안전 당국 등에서 정한 '기준치'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관리'를 위해 동물 시험 등을 거쳐 설정해 놓은 최소한의 수치일 뿐 결코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라는 것이다.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기준치'는 세슘 등 방사능 오염 관련 기준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산 농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세슘 등 방사능 오염 기준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세슘의 경우 우리나라는 식품위생법상 '식품공전'에서 1㎏당 370베크렐(Bq) 이내를 허용기준치로 정해 놓았다가 지난 9월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 금지 및 방사능 오염 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9.6조치'를 통해 100Bq로 강화했다. 그러나 강화된 세슘 오염 기준치에 대해 여전히 소비자ㆍ전문가들은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소비자들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30만여명이 가입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은 지난해 초 자체 논의 끝에 유통 식품류에 대한 세슘 검출 기준치를 를 정부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어른 8, 영유아 4㏃로 강화해 적용하기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인 핵전쟁방지를위한의사회(IPPNW)가 권고한 안전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하고 있는 독일 방사선방호위원회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한살림 관계자는 "일본 방사능 오염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방사능 오염 기준치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우리가 나름대로 기준치를 정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와서 지역 조합 및 전문가들의 토론회, 간담회 등을 통해 정하게 됐다"며 "여러 가지 자료와 각 나라별 안전 실험 결과 등을 참조했다"고 말했다. 유기농 농산물 유통 등 관련 소비자 단체들도 한살림과 마찬가지로 정부 기준보다 대폭 강화된 방사능 기준치를 정해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발 스모그로 인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의 '기준치'에 대해서도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 등이 일반인들에게 외출 자제 등 '조심하라'고 주의를 촉구하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각각 60㎍/㎥ 이상 2시간 지속(주의보 예보), 85㎍/㎥ 이상 2시간 지속(주의보), 120㎍/㎥ 이상(경보)이다. 환경부가 2015년부터 도입하는 초미세먼지 경보 기준은 일평균 50㎛/㎥, 연평균 25㎛/㎥ 수준이다. 시민들은 이 같은 기준치를 믿고 주의보 등이 발령되지 않으면 야외 활동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준치가 너무 높게 설정돼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미국은 35㎍/㎥, 캐나다 30㎍/㎥, 호주 25㎍/㎥, 일본 15㎍/㎥ 이하로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은 연평균 ㎥당 10㎍이다.이처럼 '기준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은 정부 및 관련 기관의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사람의 안전보다는 공무원 및 해당 업계의 업무 편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관련 전문가 및 사회적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 당국이나 기관들이 기준치 이하이니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방사능 오염 식품에 대한 기준치를 원자력ㆍ방사능 전문가들이 주도해 정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준치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와 시민들이 소외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기준치 결정 과정의 객관성,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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