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성CEO]②펩시코의 '슈퍼맘' 인드라 누이 CEO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는 지난 7월 미국의 식품음료회사 펩시코에 청천벽력 같은 요구를 했다.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로서 스낵회사인 몬델레스 인터내셔널을 인수합병한 다음,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음료부문을 팔라는 요구였다.
헤지펀드 ‘트라이언 펀드 매니지먼트’를 경영하고 있는 펠츠는 기업을 압박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활동가 투자자로 유명하다. 그는 2007년 영국 캐드베리에 드링크와 캔디 비즈니스를 분리할 것을 촉구해 회사 측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는 같은 해 크래프트 푸즈 주식을 매수한 다음 크래프 푸즈에 캐드베리 인수와 북미 식음료사업의 분리를 제안해 소원을 성취했다. 펠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크래프트 푸즈에서 분사한 몬델레즈 인터내설에 펩시코와 합칠 것을 종용하고 펩시코에는 몬델레즈를 인수한 다음 수익이 나지 않는 음료사업을 매각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페시코와 몬델레즈의 지분을 13억달러어치와 10억달러어치 매수했다. 그는 6월 말 현재 펩시코 주식은 전체 발행 주식의 0.8%인 1230만주를, 몬델레즈는 2.3%인 41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대주주인 그의 요구가 갖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세계 1위의 스낵회사이자 세계 2위의 청량음료 회사인 펩시코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버텼다. 인드라 누이 펩시코 최고경영자(CEO)는 그를 여러 번 만났지만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펩시코는 지난해에도 스포츠 음료 케토레이, 주스 트로피카나와 마운틴듀와 같은 실적이 부진한 음료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느니 분사하라는 투자자와 분석가들의 요구를 견뎌냈다. 펩시코 측은 줄곧 대규모 인수합병이 필요하지 않으며 스낵과 음료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펩시코는 “강력한 성장전략이 있으며 구조가 확고하고 현재까지 실적과 수익률은 펩시코가 뛰어난 능력의 회사이며,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세계 1위의 탄산음료 회사 코카콜라의 주주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왜 쪼개냐”며 누이를 거들고 나섰다.꿋꿋이 버틴 펩시코는 16일 순익이 소폭 증가한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순익은 주당 1.23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0.6% 증가한 19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일시항목을 제외하면 주당 1.24달러로 전문가 예상 1.17달러를 크게 웃돌았다.총매출은 1.5% 증가한 169억달러로 전문가 예상치 170억달러를 조금 밑돌았다. 매출 증가의 공신은 미주시장에서 7%나 증가한 프리토 레이를 비롯한 스낵이었다.이 덕분에 펩시코의 주가는 이날 2.1% 오른 82.87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펩시코 주가는 올 들어 20% 올라 21%가 상승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누이는 펠츠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4분기에도 주당 1.06달러, 17억 달러의 순익을 냈고 올해 들어서는 2분기에 주당 1.49달러, 20억1000만 달러의 흑자를 낸데 이어 3분기에도 흑자를 냄으로써 펠츠의 공격의 예봉을 꺾은 것이다. 펩시코가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누이의 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누이는 올해 미국 내 음료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마케팅 강화와 건강식품 확대, 제품가격 인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녀는 콜라가 포함된 탄산음료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음료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선포했다.코카콜라 등 다른 브랜드들과 벌이는 경쟁에서 이기는 데 주력하기보다 펩시코만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그 전까지 누이 CEO는 회사의 살을 빼고 맷집을 키우는 일을 했다. 1995년 펩시코에 합류한 누이는 비대한 몸집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펩시코의 구조조정에 제일 먼저 착수했다. 1997년 타코벨과 피자헛, KFC 등 패스트푸드 부문을 분리하고 외식업체인 트라이콘을 매각했다. 이어 1998년에는 음료기업 트로피카나와 스포츠음료를 생산하는 퀘이커오츠를 인수해 펩시코를 탄산음료 영역 밖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녀는 위험감수자(risk-taker)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펩시코에서 평생 잔뼈가 굵은 경영자라면 자기 살을 잘라 내는 이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이는 펩시코 외부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감각을 익혔다.1980년 예일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거쳐 모토로라와 글로벌 기계 제조업체 ABB 등에서 전략기획부문을 담당하면서 경력을 두루 쌓았다.무엇보다 그녀는 인도 태생의 외국인이다. 그녀는 1955년 인도 타밀나두 주의 마드라스(현재의 첸나이)에서 평범한 인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누이는 마드라스크리스찬대학에서 물리학과 화학, 수학 학사를 취득하고 1976년 캘커타인도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그녀는 대학원 졸업 후 영국계 섬유회사 투탈에 이어 존슨앤존슨 봄베이(현 뭄바이) 사무소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을 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생리대를 광고할 수도 없고 소매상들도 잘 팔지도 않았지만 누이는 중고교와 대학을 직접 찾아가 학생들을 교육시켜 존슨앤존슨 소비자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잡지에 난 예일대 대학원생 모집 공고를 보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입학허가가 나 1978년 예일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장학금을 받아도 돈이 없던 그녀는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기업들이 학생들이 일하게 하는 ‘서머잡’에 지원했을 때 정장을 살 돈이 없어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입고 인터뷰했을 정도였다.그녀 인생의 전환기는 1994년에 왔다. 두 곳에서 스카우트제의를 받았다. 하나는 제너럴 일렉트릭이었고 다른 하나가 펩시였다. 어디로 갈지 결심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당시 펩시코의 CEO이던 웨인 캘러웨이(Wayne Calloway)가 한 말이 그녀의 심금을 울렸다. “GE는 훌륭한 회사지만 펩시는 당신을 필요로 하며, 펩시를 당신을 위한 특별한 직장으로 만들겠다”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주저없이 서명했다. 그의 말대로 펩시는 그녀에게는 특별한 직장이 됐다. 6년 뒤인 2001년 5월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이 해를 결코 잊지 못한다. 시가총액이 경쟁사인 코카콜라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펩시가 ‘만년 2등’이라는 설움을 떨쳐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누이는 2006년 CEO의 자리를 꿰차고 이듬해 5월에는 이사회 회장직에 올랐다. 그녀 나이 51살 때였다. 펩시코 41년 역사에서 첫 여성 회장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하는 미국의 500대 기업에서 CEO와 회장직을 겸하는 다섯 번째 여성 경영인이 됐다. 그녀는 펩시코 CEO로서 총 17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아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상복도 따랐다. 2006년부터 해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경제주간지 ‘포브스’ 등이 뽑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에는 마이애미대학에서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다수의 명예학위도 받았다.그녀는 일과 결혼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결혼해 남편과 두 딸을 두고 있는 어머니다. 딸 중 하나는 그녀의 모교인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녀의 언니는 인도의 유명한 가수이다.그녀는 직원들에게도 일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틈만 나면 “펩시의 직원기이기 전에 엄마이며 아빠임을 먼저 깨달으라”고 강조한다. 포브스는 2012년에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어머니 20인’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이어 3위에 그녀 이름을 올렸다. 일과 가정을 둘 다 훌륭하게 꾸리는 ‘슈퍼맘’이라는 게 이유였다.재계와 학계, 가정 등 세 가지 세계에서 그녀는 확실한 성공을 거둔 경영자다. 20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27명의 임원을 호령하는 그녀는 임원들의 부인에게는 남편들의 긴 근무시간에도 내조를 소홀히 하지 않는 데 대해 감사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는 배려있는 인물이기도 하다.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세계 일류 기업에서 7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내공이 있었기에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한 행동주의 투자자가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스낵의 매출 신장은 누이 CEO가 펠츠의 공격을 잘 막아낼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출액과 판매량이 각각 1.5%, 4%가 감소한 북미 음료 사업 실적은 펠츠에게 공격 명분, 공격의 실탄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누이가 풀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없다.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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