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사태로 기업어음(CP) 제도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동양그룹은 유동성 위기가 급박해진 8월 말부터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달 말까지 한 달간 3684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같은 기간 시장성 차입 총액 5440억원의 68%다.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워지자 회사채나 CP 등을 팔아 직접 자금조달을 하는 시장성 차입에 나섰고, 그중 회사채 발행마저 불가능해지자 CP를 마구 발행한 것이다. CP가 막판 돌려막기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CP 잔액은 1조4000억원이다. 이를 4만명 이상의 투자자들이 사서 갖고 있다. 그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다. 이들 중 금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낸 사람은 지금까지 7000명을 넘었다. 신청자 중 70% 이상은 5000만원 이하 투자자다. 퇴직금을 넣은 60대 남성,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투자한 50대 여성 등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동양증권은 이들에게 위험성은 제대로 알리지 않고 그저 고금리 상품이라면서 계열사 CP를 사도록 했다. 동양그룹 사태의 파장은 투자자의 피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당장 금융시장 전반이 불안해졌다.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신용등급이 최우량이 아닌 기업들은 회사채나 CP 발행계획을 포기하거나 발행금리를 올려야 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동양그룹 다음 차례로 부도위기에 몰릴 기업들의 명단까지 나돌고 있다. 서민ㆍ중산층 투자자의 피해와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이 이렇게 큰 것은 CP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거론하기에는 발행자인 기업과 일반 개인투자자 간 정보비대칭이 너무 크다. CP는 주식과 달리 발행 기업에 관련 공시 의무가 없다. 기관투자가라면 모르겠으되 일반투자자는 CP 발행 기업이 부도위기에 몰렸어도 그런 사실을 알기 어렵다. 게다가 신용평가회사들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번에도 막판 돌려막기가 시작된 뒤에야 해당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허겁지겁 낮췄다.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그동안 대응조치에 굼떴다. CP가 더 큰 시스템 리스크의 원인이 되기 전에 발행ㆍ유통ㆍ정보공시ㆍ감독 등 총체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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