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전문기자 조용준기자
왕이 탄 수레가 지났을법한 황금빛 들녘을 따라 두 발로 뚜벅 뚜벅 신라 천년 왕의 길을 더듬는다. 구불 구불한 길 끝자락에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릉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들녘이 파도를 친다. 햇살을 받아 반짝 반짝 황금빛 물결이다. 구불구불 제멋대로 생겨먹은 길은 운치 있고 나무뿌리 얽힌 소나무숲은 깊고 호젓하다. 그 뒤에 들어앉은 왕릉은 또 어떠한가. 천년을 훨씬 넘게 이어온 시간의 깊이에 절로 가슴이 쿵쾅 쿵쾅 방망이질 한다. 수레가 지났을 그 길을 따라 두 발로 뚜벅뚜벅 천년 옛길을 더듬는다. 이곳이 경주다. 신라 천년 동안 지속된 왕국은 아직도 천년전 신라인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도(古都)다. 그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박물관이다. 다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수많은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래서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하루 이틀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런 경주에 귀가 솔깃한 길이 생겼다. 신라 천년 '왕의 길'이 바로 그것이다. '왕의 길'은 신라 56명 왕들의 숨결이 밴 길이다. 반월성에서 시작해 안압지와 추령고개, 감은사지, 대왕암에 이른다. '왕의 길'의 단서는 '삼국유사'다. 이 길은 월성에서 감포 등 동해를 잇는 신라 역사 속 주교통로요, 용성국의 왕자인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한 길이다. 어디 그뿐인가 문무왕의 장례길이며 신문왕이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신라의 건국시조인 박혁거세, 탈해왕, 선덕여왕, 문무왕과 신문왕 등 신라 대표 왕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5개 코스로 나뉜다.경주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왼쪽)과 진평왕릉.
이중 '신문왕 호국 행차길'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추령고개에서 용연폭포를 거쳐 기림사, 감은사지, 문무왕릉의 대왕암에 이르는 약 15㎞의 구간이다. 하지만 가을걷이가 시작된 이맘때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선덕여왕릉과 그의 아버지 진평왕릉을 이어주는 '왕의 길'이 그것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경주편에는 56명의 신라 왕 중 유일하게 진평왕과 선덕여왕이 등장할 정도로 이들 부녀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선덕여왕릉과 진평왕릉은 직선거리로 1.5km를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가깝다. 외둘러 뒷짐지고 걷는 '왕의 길' 코스는 4km가 넘지 않는다. 경주 시가지 동남쪽에 낭산(狼山)이 있다. 서라벌 시절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던 곳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결 선생이 살았고, 대문장가 최치원이 공부하던 독서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선덕여왕릉이 있다. 7번 국도변 사천왕사지에서 울창한 소나무숲을 따라 500여m 오르면 릉이다. 예전에는 찾는 이가 드물었지만 '선덕여왕' 드라마 이후 부쩍 늘어났단다.구황리 삼층석탑
이곳 '왕의 길'중 구황리 삼층석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단연 압권이다. 들판은 황금빛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논두렁에는 백로가 춤을 추고 풍년을 맞은 농부의 손놀림의 힘이 넘친다. 자전거로 길에 든 연인의 뒷모습이 구불구불한 길과 함께 한 폭의 풍경화를 선사한다. 황금들판 끝자락에 진평왕릉이 있다. 화려할 것은 없지만 왕릉은 아름드리 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운치가 그만이다. 진평왕은 무려 52년간 왕위에 있으며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고, 군사를 이끌고 전장을 누빈 왕이다. 왕이 수레를 타고 행차할 것 같은 황금빛 논두렁길을 따라 진평왕릉으로 향한다. 천년의 아득한 세월이 손에 잡힐 듯 와 닿는다. 경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