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우리 밥이나 먹으러 나가요.”윤여사가 말했다.“그럴까요?”하림이 어정쩡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래. 그게 좋겠어. 아직 아침도 못 챙겨먹었다니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렇잖아도 재영 누님께서 니 영양 보충 시켜줄라고, 격려 차 일부러 오셨으니 말이야.”“지랄.”동철의 설레발에 하림이 멋쩍게 웃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동철이 지금 그 꼴이었다. 하긴 일회용 봉지 커피 밖에 대접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다 막상 화실 주인인 윤여사가 와 있는 판에 자기가 설쳐대는 것도 어색한 노릇이었다.“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저기 물 올려놓았으니까 커피 한잔씩 타서 자시고....”그렇게 말해놓고 하림은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대충 물이라도 바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그동안 내버려두었더니 며칠 새 수염도 제멋대로 자라있었다.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먼저 비누칠을 하고 깨끗이 수염부터 밀었다.그나저나 두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은 의외였다. 전화라도 넣고 왔다면 모를까, 것도 없이 임검 나온 순경처럼 불쑥 나타난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동철 자기 말마따나 그냥 격려 차 온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긴 여긴 윤여사는 자기 화실이고, 동철이는 오랜 친구니까 불쑥 찾아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런 복잡한 때에 아무 사전 예고 없이 나타난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어쩌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림 혼자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자기 혼자 지레 복잡하게 계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장이니 남경희니, 하소연이니 하는 존재를 그들이 자세히 알 까닭이 없었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기라도 하는 양 면도를 마친 하림은 푸푸 소리 내어 세수를 했다. 하는 김에 머리까지 감았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랑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었다.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세수를 마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오자 두 사람은 사이좋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와우, 사람이 달라졌네. 이제 보니 하림이 자네 미남일세.”동철이 놀리듯이 말했다.“지랄.”윤여사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하림이 멋적게 웃었다.“뭘 먹을까?”동철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거나.”하림이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다.“아무거나? 그딴 거는 없어.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마치 자기가 사주기라도 할 것 같은 말투였다.“짜장면.....?”하림의 대답에 윤여사가 도톰한 입술을 비틀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지난 겨울 동묘에서 만났을 때의 첫 모습이 떠올랐다. 일견 경박스럽기도 하고 일견 활달해보이기도 한 웃음이었다.“촌놈.”동철도 따라 웃으며 놀리듯이 말했다.“일단 나가고 보자. 빨리 옷이나 입어.” 글. 김영현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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