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지난 3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애플의 일부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결정을 뒤집었다. 거부권행사를 통해서다.지난 6월 4일 미국의 언론과 외신들은 ‘삼성의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긴급 뉴스로 다룬 바 있다. ITC가 애플의 아이폰 4, 아이패드 2 등 일부 제품에 대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입 금지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삼성과 애플간에 피말리는 글로벌 특허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는 삼성의 의미있는 승리로 평가받고 기록됐었다. 하지만 두달만에 삼성은 그 승리와 전리품을 빼앗기게 됐다. 사실 그동안 애플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기 위해 가능한 채널을 총동원했다. 자신들의 거부권 요구에 통신사인 AT&T나 버라이즌은 물론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을 동참시키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지난 달 말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이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 사이 애플은 ‘디자인드 바이 애플 인 캘리포니아(Designed by Apple in Califonia)’ 라는 카피를 내세운 광고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에게 거부권이라는 통 큰 선물을 안겨줬다. 이 결정에 애플은 “박수 갈채를 보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조차 이 결정을 두고 머쓱해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지를 비롯, 거의 모든 매체는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 앞에 26년만에 나온 ‘이례적(rare)‘ 결정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예상 밖이고 납득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조차 거부권이 나오기 불과 이틀 전에 "거부권 행사가 나오긴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그만큼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그도 중국 등을 향해 자유무역과 시장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보호무역 주의를 비판해왔다. 또 기술선진국인 미국은 자국 기업의 특허 등 지적재산권 보호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자신이 강조해온 원칙과 미 행정부의 정책과는 역주행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을 위임받아 발표한 마이클 포르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아예 "미국의 경제 여건과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자국 기업을 위해 주관적인 판단에 따랐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밝힌 셈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관심은 다시 9일로 연기된 ITC의 삼성 제품 관련 판정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는 애플의 제소로 삼성의 일부 제품이 디자인 특허 침해 등을 이유로 수입 금지 예비 판정을 받은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ITC의 관행상 예비판정이 뒤집히기는 어렵다고 보고있다. 그렇다면 다시 공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로 넘어간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엔 삼성 제품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거부권 여부를 결정해야한다. 삼성 제품에 대해 애플과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과 이중잣대 논란을 거세게 불러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자해지를 위해선 그가 거부권을 다시 행사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무난한 수순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미 시장과 무역에 대한 문제를 자국 보호와 정치 논리로 해결한다는 비판과 부메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플 편을 들어주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과 무역당국이 치러야할 대가는 적지 않아 보인다. 원칙이 흔들리면 행보가 꼬이기 마련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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