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최근 군대를 소재로 한 예능과 드라마가 대세다. 사단장, 대대장, 행정보급관, 소대장, 말년병장, 분대장, 일반 사병으로 이어지는 계급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에 군 전역자들은 물론 여성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가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농담이라는 표현은 과거의 일로 사라진 셈이다.기자의 가정도 비슷하다. 아빠가 군대 드라마 '푸른거탑'을 보고 있으면 10살 딸과 6살 아들이 슬며시 다가와 TV화면에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깔깔대며 웃는다. 이 드라마 속 내무반에서 가장 대비되는 인물은 제대를 목전에 둔 말년병장과 악역을 맡은 상병, 그리고 신병이다. 기자가 가장 눈 여겨 보는 인물은 이중 말년 병장이다. 말년 병장은 이제 분대장의 자리도 후임에게 물려주고 제대할 날을 기다라며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는 처지다. 그는 수시로 군용 베개 속에 든 칩을 내던져 내무반을 엉망으로 만들고 소대원들이 걸그룹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으면 못보게 방해하는 행동으로 후임병들을 짜증나게 한다. 이장면에 많은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지만 정작 이런 경험을 당해본 이들이라면 후임병들의 기분에 공감할 것이다.하지만 막상 말년 병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영향력이 과거 같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후임 분대장이 있는데도 그는 최고 선임자로서 발언권을 행사하고 요리저리 빠질 궁리만 하지만 위기에서는 기지를 발휘해 후임병들과 함께 해법을 찾곤 한다.이것이 엄연한 군대 내무반의 질서다. 그리고 이런일은 군대가 아닌 현실속에서도 엄연히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돌연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세게 경제 회복을 견인하던 미국이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주인공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의 벤 버냉키 의장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전부터 의장직을 수행하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자금을 살포했던 그다. 그런 그가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누가 결정될 것이냐에 집중되던 상황이었다. 버냉키 의장도 사실상 말년 병장과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그런데 이 '말년 병장'이 대형 사고를 쳤다. 후임병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위력이다. 양적완화 조치를 축소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전세계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세계 금융 시장에 갓 입대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추진하던 엔화 약세 현상은 그의 발언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일본 뿐 아니다. 전세계 신흥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오고 주가와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수많은 투자자들은 채권금리 급등과 주가하락으로 큰 손실을 봤다.말년 병장의 파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말년 병장의 발언이 있을 예정이다. 전세계 시장 참가자들과 정책당국자들은 그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버냉키가 말년을 잘 마무리하고 아무 사고없이 제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꼬장'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기 때문이다.백종민 기자 cinq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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