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신뢰프로세스와 개성공단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지난 주말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갔다.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엔 딱 두 번 왔다. 첫 번째는 2007년이었다. 강변북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보자며 무작정 간 길에 우연히 임진각 표지판을 보고 갔다.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란 이곳엔 각종 전적비와 함께 북쪽 끝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 형형색색 바람개비가 전시돼 있었다. 임진각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선 북한, 개성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범퍼카 바이킹 등 각종 놀이기구가 있는 평화랜드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 표정이었다. 바로 앞에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안전한 곳이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을 거다.이로부터 6년 후인 2013년 6월8일. 이곳에 다시 간 이유는 개성, 정확히는 개성공단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남북 경협의 성공모델로 꼽혔던 개성공단은 지난 4월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제한 조치와 근로자 철수 등으로 잠정 폐쇄됐다. 이후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한 거래처의 손해배상청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고 해외 바이어의 이탈 소식도 들렸다. 이러다가 완전폐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질 찰나 현충일 오전, 북한이 전격적으로 남북당국회담을 제안했다. 입주 기업인들은 '이제 됐다'며 흥분했다. 다음 주면 개성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그래서 다시 갔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6년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때 보다도 남북 간 긴장도가 높아져 있지만 이곳은 평화로웠다. 안전한 곳이란 신뢰는 여전히 두터운 것 같았다. 순간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입주기업 S대표 얼굴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이곳에서 30분이면 도착한다는 개성공단이 눈앞에 있는데 갈 수 없다니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싶었다. 이날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나 홀로 감성'에 빠졌던 것은 나 역시 이젠 개성공단 사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 느껴져서였다.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문제가 생긴다고 했던가. 미리 든 축배는 결국 사달이 났다. 12~13일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은 무산됐다. 통신선도 끊겼다. 덩달아 가동을 준비하겠다던 입주기업인들의 계획도 수포가 됐다. 입주기업들은 끝까지 개성공단의 가동을 기다릴지, 다른 생산기지를 찾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섰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안전한 대체 생산기지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외였다. 2005년 개성공단 입주 후 중국 베이징과 서울 공장을 폐쇄했다는 S대표는 "허탈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볼 참"이라며 "정부를 믿고 입주를 결정한 만큼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개성공단 사업에도 적용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정상적 가동을 위해 회담의 '품격'이 훼손돼지 않아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입주기업인들도 남북이 합의한 50년간에 걸친 투자 보장이 확고하게 지켜질 것으로 믿고 자본과 기술을 투입했다. 투자 보장 기간 내 폐쇄될 수 있는 것이란 불신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입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축만큼이나 기업과의 신뢰 프로세스 구축도 중요하다"는 기업인들의 애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은정 기자 mybang2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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