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1963년 오늘. 베트남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 베트남 정부의 불교탄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틱꽝득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스님은 티엔무 사원의 주지였죠. 스님 주위에도 많은 스님들이 둘러 앉아 있고 또 서 있었습니다.스님은 묵묵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다른 스님 한 분이 하얀 통을 들고 조심스레 틱꽝득 스님의 온 몸에 찬찬히 기름을 붓습니다. 엄숙한 종교행사처럼 보입니다. 마침내 기름 붓기를 마친 스님은 틱꽝득 스님의 뒤에서 합장을 합니다. 이 때 주위의 스님들이 술렁이며 틱꽝득 스님쪽으로 가려 했지만 경찰들은 이를 제지합니다. 왜 경찰이 스님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었는지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입니다. 분신자살이 아닌 '소신공양'으로 종교행사의 하나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당시 베트남 대통령 응오 딘 지엠은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때문에 국민의 절대다수가 믿는 불교를 탄압하죠. 틱꽝득 스님은 온몸이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중에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부좌 자세를 유지합니다.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불타는 스님 앞에 엎드려 절하는 동료스님들. 스님은 죽음을 맞아 쓰러진 상태에서도 가슴에 모은 손을 풀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국내외에 고스란히 보도돼 큰 충격을 주었죠. 스님은 시종 어떤 항의의 몸 동작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몸으로 말하는 사자후(獅子吼) 였습니다.문제는 대통령(응오 딘 지엠은 독신 이었습니다)의 동생의 부인으로 실질적인 영부인 역할을 했던 마담 누가 이 사건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땡중의 바베큐 쇼"라고 말해 버립니다. 이 말은 국내 여론에 기름을 부어버렸죠. 또 베트남 정부를 돕던 미국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해 11월 1일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대통령과 그의 동생은 죽음을 맞습니다.티엔무 사원에는 지금도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사진과 당시 타고 갔던 낡은 자동차가 전시돼 있습니다.'소신공양'은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있었습니다. 지난 1998년 6월 경기도 청평 감로사에서 태고종 승정 충담 원상대종사가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져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는 열반송을 남기고 소신공양을 했습니다. 또 지난 2010년 5월에는 경북 군위 지보사의 문수스님이 낙동강 지류인 위천 강둑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소신공양을 하기도 했습니다.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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