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기업 대표 임직원 200명 모여 정상화 촉구..일본 관광버스 통과 보며 눈물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세상 어느 정부도 행복하게 일할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빨리 조건 없는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30일 오전 9시 30분 파주 통일대교 앞, 전국 방방곡곡에서 200여명의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와 임직원들이 모였다. 봉고차부터 승용차, 트럭까지 집결했다. 버스를 대절해 온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교 앞 바리케이트를 넘을 수 없었다. 바리케이트에는 '이 곳은 민간인 통제지역임. 사전 허가되지 않은 차량은 유턴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재원들이 바리케이트 앞을 서성이고 있는 동안 일본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 몇 대가 경찰들의 비호를 받으며 다리를 건너갔다. 관광객들에게 활짝 열린 다리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게는 꽉 닫힌 현실일 뿐이었다. 이 다리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다. 개성공단까지는 차로 불과 20여분 거리다. 관문에는 '통일의 관문, 통일한국의 중심도시 파주'라는 공허한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었다.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성공단 대표들과 주재원들이 다리 앞에 모인 것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울분 때문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지난 2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대회에 참석, 방북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다. 당시만해도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오늘 모인 주재원들의 얼굴에서는 '역시나'라는 피로감만이 엿보였다. 근로자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임동 개성 대표는 "방북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정상화를 다시 한번 촉구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며 "대표들이 아닌 근로자 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집결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기업 대표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지만 이날 모인 대부분이 주재원과 본부장 출신이었다. 그들은 개성공단 기업 대표들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였다. 이 대표는 "비대위에서 대체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그들이 기업 오너인 만큼 이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남북한 정부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개성공단은 우리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일터였다"며 "두달 전만 해도 남한 근로자와 북한 근로자가 어울려 행복하게 일했는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 정부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에도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번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개성공단 주재원들은 이 대표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이 휴직 상태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권고사직 처분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혹시나 개성공단이 정상화될까 하는 기대에 다른 일을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들을 써주려는 남한 기업들도 거의 없다. 이 대표는 "9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일해왔던 주재원들이 지금와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겠느냐"며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임원급인 본부장들은 상황이 더 난처하다. 본인의 입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주재원들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 때문에 두 배로 힘들다는 것. 박경선 지에스용인 법인장은 "법인장들과 주재원들의 경우 생업이 걸려 있어 더욱 힘든 상황"이라며 "도의적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주재원들은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생산담당 직원은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높은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통해 들어오라는 뜻을 밝힌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자존심을 접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그런 제스쳐를 취했을 때는 유화책을 써야 하는데 정부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여전히 북측에 강경한 대응으로 나서고 있으며, 북한 역시 민간기구를 통한 방북만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복귀시간인 10시가 가까워 오자 바리케이트 앞에서 망설이던 주재원들이 하나 둘 바리케이트를 넘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재원 수십여명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침묵 집회를 벌였다. 하지만 그들의 조용하지만 간절했던 집회에 화답하는 소리는 그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이지은 기자 leez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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