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스토리]키다리아저씨 '삼일이'와 '육삼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서울의 '마천루'를 더듬다지난 반세기 청계천 옆 지켜온 '삼일빌딩'당시 획기적 시도였던 31층 건물 건립건물에 투영된 시대상과 고(故) 김중업 선생의 민족의식 서울시민 마음 속 여전히 최고(最高)인 '63빌딩' "건축은 당대 현실과 상황을 표현하는 매개"

▲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의 모습

[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청계광장에서 청계2가 방향으로 걷기를 20여분. 청계2가 사거리를 끼고 올곧게 뻗어 올라간 고층빌딩 한 채가 시선을 확 붙잡는다. 천변을 따라 독특한 외관의 으리으리한 사옥들이 즐비한 가운데서도 직사각형 모양의 창들로 온몸을 두른 '우직한' 모습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랫쪽을 시작으로 시선을 올려 쳐다 보노라면 제법 뒷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높이 솟아 있지만 눈에 띄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외형이다. 오히려 그 점이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반듯반듯 난 창에 빛이 바랜 듯 검은 색상의 표면은 '강직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바로 한때 인간에 의한 건축물로서는 한국 '최고봉(最高峰)'이었던 '삼일(3.1)빌딩'이다. 31층이어서, 혹은 3.1운동 정신을 생각하자는 뜻에서 3.1이란 이름이 붙어 세워져 지금의 자리를 지켜온 시간이 어느덧 43년이다.  지금 이 건물에는 편의점과 패밀리레스토랑, 금융기관, 법률사무소 등이 입주해 있다. 애초 삼미그룹을 설립한 고(故) 김두식 회장이 모기업이던 대일목재공업의 사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은 세월의 흐름 속 계속 옷을 갈아 입었다. 한국 최고층 빌딩의 자리는 내줬지만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지ㆍ관리는 국내업체인 삼일개발에서 맡고 있지만 1985년 산업은행이 빌딩을 사들인 것을 다시 2001년 외국업체인 홍콩의 '스몰록인베스트먼트컴퍼니'에 넘겼다. 한국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건물의 소유주가 외국자본이라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비치기도 하다. 그래서 이 건물의 상징성을 생각해 소유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지난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종로구 관철동 소재).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故)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건축물로, 1985년 63빌딩이 지어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도시는 왜 고층빌딩을 세우려 할까? 그리고 도심 속 고층빌딩이 도시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토지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 제한적 토지에 많은 자본을 운용해야 하는 도시는 고층빌딩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개발국들이 대도시를 거점으로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경쟁적으로 고층빌딩을 지었다. 그런 점에서 고층빌딩은 '권력'과 '자본' 사이 의기투합의 산물이다.  삼일빌딩은 그 같은 고층빌딩의 의미를 실체로서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우리나라 고층빌딩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로, 고(故) 김수근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고(故)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설계한 이 '작품'은 지하 2층 지상 31층 규모에 높이는 114m로, 요즘 기준으로 보면 고만고만한 수준이지만 1970년 완공 때는 출생과 함께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최고의 지위는 1985년 63빌딩이 세워지면서 내줬지만 이 빌딩을 올려다 보면서 자란 많은 이들에게 삼일빌딩은 여전히 '최고의 빌딩'으로 명성을 떨쳤다. 멀리서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층을 세는 게 재미였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70, 80년대에는 창경원과 함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기도 했다.  

▲ 삼일빌딩을 설계한 고(故) 김중업 선생. 한국 현대건축가 중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한 그는 프랑스 르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수업을 받았고, 귀국해서는 홍익대 건축미술과 교수와 김중업 합동건축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삼일빌딩에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정치적 의도와 '3.1운동'의 민족주의적 요소까지 내포돼 있다.삼일빌딩이 착공에 들어간 건 1968년이다.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기운이 대지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 휘황찬란하게 건물의 외벽을 장식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에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고층빌딩이 필요했던 건 산업화와 민족의식의 상징은 물론 정체돼 있던 대한민국의 구심점이 될 만한 구조물이 필요해서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민여론을 모으고, 체제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이렇듯 삼일빌딩은 도심 속 고층빌딩이 문명의 이기와 편리성이나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만 지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수많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의도가 얽히고설켜 한 채의 빌딩이 탄생했다는 의미다.  도시의 원형과 상징성을 구현하고자 건립된 빌딩으로는 깨알 같은 타일로 몸 전체를 두른 채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의도 '63빌딩'을 빼놓을 수 없다. 지하 3층 지상 60층에 그 높이가 무려 249m에 달하면서 조화로움과 균형미를 갖췄다는 평을 받는 건물이다.서울에서 가장 수평성이 뛰어난 곳에 곡선으로 시작해 수직적 형태로 쌓아올려서인지 시각적 안정감에서는 다른 건물을 압도한다. 이 건물은 서울이 동서남북으로 날로 팽창하던 시기에 여의도가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기념비와도 같았다.

▲ 깨알 같은 타일을 온몸에 두른 채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63빌딩'. 그 높이는 249m로 완공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명성을 떨쳤다.

한편으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전 세계에 서울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도 작용했다. 건립 당시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지금은 목동 하이패리온(256m)과 도곡동 타워팰리스(264m)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어떤 이들에겐 삼일빌딩이 영원한 최고이듯 63빌딩은 여전히 많은 서울시민들의 마음 속에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영어로 건축을 뜻하는 'Architecture'는 원리, 원형을 뜻하는 'Archi'와 기술의 'Tecture'가 합쳐진 말이다. 어원으로만 유추하자면 건축은 '원리와 기술의 결합' 또는 '원리를 기술로 구현하는 과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높고 거대함을 추구하는 마천루의 홍수 속에서, 위협감을 주는 건물들이 하늘과 도시의 공간을 '찢고' 있지만 삼일빌딩과 63빌딩은 원형과 기술의 완숙과 함께 지금의 서울 도심을 풍요롭게 하는 풍경이다.나석윤 기자 seokyun1986@<ⓒ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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