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명단 2차 공개..실명 거론에 파장 증폭崔 회장·대기업 임원, 명확한 해명없이 의혹만 키워 국세청 "계좌성격·사용내역 등 자료활용 탈세 검증"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황준호 기자, 임선태 기자]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등 대기업 오너와 임원 7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22일 1차 발표에 이어 또 한번의 파장이 일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한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페이퍼컴퍼니가 통상 기업이나 자산가들의 탈세에 악용된다는 점, 또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향한 의혹의 시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7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한 한국인 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 22일에 이은 2차 발표다. 이번 2차 명단에는 최 회장과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이사,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 케미칼 부회장과 배우자 김영혜씨, 이덕규 전 대우인터네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폴란드차 사장 등 국내 4개 대기업 회장과 전ㆍ현직 임원이 포함됐다.뉴스타파에 따르면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인 최 회장과 조용민 전 대표는 2008년 10월 버진아일랜드에 '와이드 게이트 그룹'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최 회장은 이 회사의 발행주식 5만주 가운데 90%인 4만5000주를 취득했다. 나머지 5000주는 당시 전무였던 조용민 전 대표가 보유했다.
▲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지난 2010년 4월 서강대학교 50주년 기념, 서강대 성이냐시오 강당에서 '더 박스(The Box·컨테이너)'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최 회장은 국내 1위 해운사를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다양한 실례를 들어가며 해운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기꺼이 강연에 응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최 회장이)회사를 설립한건 맞지만, 특별한 필요성이 없어 2011년 11월께 정리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밝힌 2011년 11월은 최 회장과 주식을 함께 보유했던 조용민 전 대표가 한진해운에서 사임한 시기다. 탈세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가 조 전 대표가 회사를 떠나자 관련 페이퍼컴퍼니도 정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한진해운 측은 최 회장이 이 회사를 왜 설립했는지, 또 왜 정리했는지는 명확히 해명하지 못했다.또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은 1996년 2월 일본 도쿄지사 근무 당시 쿡아일랜드에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라는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그 해 3월과 97년 8월 각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위치한 아파트 두 채를 잇따라 사들인 다음 5년 뒤인 2002년 6월 한화그룹 일본법인인 한화재팬에 매각했다. 아파트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235만494달러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뉴스타파는 밝혔다.뉴스타파는 아파트 구입 당시 황 사장이 39세의 일개 직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어 개인자산이 아닌 실제 소유주를 숨기기 위해 명의를 빌려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실제 소유주인데 이를 숨기기 위해 한화 직원의 명의를 빌렸다는 것이 뉴스타파의 주장이다. 또 이를 나중에 그룹예산으로 다시 사들였다는 점도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1990년대 초 한화재팬이 거래 접대 활용, 투자 목적, 직원 복리후생 등을 위해 하와이콘도 구입을 검토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해외법인이 해외부동산 취득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래서 1993년과 1997년 당시 일본법인에 있었던 황용득 사장 명의로 우선 구매하게 됐다"고 해명했다.또한 이 관계자는 "(아파트)구입 당시 명의는 황 사장이었지만 자금출처는 주변 지인들이었다"며 "이후 2002년 해외법인의 해외부동산 취득 제한이 풀린 후 한화재팬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취득했다"고 덧붙였다. 조민호 전 SK케미칼 부회장은 1996년 1월 선경인더스트리 대표이사 재직 중 버진아일랜드에 '크로스브룩 인코퍼레이션'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회사의 발행 주식이 단 1주에 불과하다 점이다. 이 1주의 주주도 익명처리돼 있다. 조 전 부회장은 등기이사로만 등재돼 있었다. 결국 이 회사의 실제 주인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익명의 주주는 주식을 1996년 취득해 7년간 보유하다가 2003년에 조 전 부회장의 부인에게 처분했다.이날 7명의 명단에 함께 거론됐던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도 2005년 7월 버진아일랜드에 '콘투어 퍼시픽'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데, 이 법인의 발행주식 또한 1주에 불과하다.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되는 페이퍼컴퍼니는 발행할 주식을 정관에 기재하도록 돼 있을 뿐, 발행주식 총수를 얼마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실제 회사로서의 영업 목적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기 위해서 주식 수를 1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체가 없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확인한 결과 조 전 부회장의 계좌(페이퍼컴퍼니)는 100% 개인투자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며 "회사가 언급할 내용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고,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우리가 설립한 회사가 아니고, 우리가 해당 법인(페이퍼컴퍼니)과 거래한 내역도 없다"며 "(대우인터내셔널과)전혀 무관한 법인이고, 이덕규 전 이사는 2008년 전무로 퇴임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는 탈세와 연결 고리가 있는 만큼 회사의 설립 의도가 불법, 편법과 관련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국세청은 최은영 회장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한 것으로 드러난 대기업 전현직 임원들의 탈세 여부를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인사들 및 기업에 대한 탈세 여부를 검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해당 기업의 해외계좌 개설 여부, 계좌의 성격, 사용 내역 등 국세청이 갖고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형광 기자 kohk0101@황준호 기자 rephwang@임선태 기자 neojwalk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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