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닿는 곳 뭔지 아는가기러기가 눈길 밟은 것 같네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은들기러기 어디로 날아갔는지 어찌 짐작하리늙은 중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되고벽은 무너져 옛 시를 볼 수 없구나옛날 고생했던 일 다시 기억하긴 하는가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고 절뚝거리는 나귀는 울고■ 동파(東坡) 소식(1037~1101)은 아우 소철과 중국 허난성 면지현의 절에서 하룻밤 묵었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도중에 말이 죽어서 나귀를 타고 이 절까지 고생하며 왔다. 형제는 늙은 중이 거처하는 방에서 밤을 보내며 벽에다 함께 시를 썼다. 오랜 뒤에 동파가 다시 그 절에 가 보니 중은 죽어 탑 속에 들어갔고 절의 벽은 무너져 자취도 없었다. 소철이 쓴 시는 아마도 '인생 닿는 곳 뭔지 아는가(人生到處知何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간의 깨달음을 보태 형이 한 수 읊었다. 동파는 그때 적어 놓았던 시가 사라진 것이 몹시 아쉬웠던 모양이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그날 밤의 흥취를 떠올리며 허망해했다. 하지만 자취가 있다 한들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의 어떤 방향도 말해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자취에 불과한 것일 뿐. 그것보다는 차라리 머릿속에 기입된 메모리가 낫다. 그때 정말 죽을 맛이었지. 말이 죽어 나귀를 탔던 것 생각나니? 그 생각을 하니 아우가 더욱 그리워졌을 것이다. '고생'의 기억만큼 마음을 돋우는 시(詩)가 어디 있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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