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블랙컨슈머, 사회적 통념 넘어선 횡포

조재홍 KDB생명 사장

최근 블랙컨슈머로 회사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보험대리점을 통해 우리 회사에 가입한 고객으로부터 청약철회 요청이 들어왔단다. KDB생명이라고 하지 않고 KDB금융그룹이라고 소개해서 가입했으니 보험료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고객 본인임을 확인하고 당일로 보험료를 돌려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객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보험권유자(대리점 모집사용인)의 불완전 판매사항을 회사에 알려줬고 그 과정에서 수차례 전화 통화와 팩스 이용으로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투입됐으니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감안해 100만원을 보상하라는 요구를 사장에게 직접 해 왔다.  불완전 판매를 알려준 것은 고맙지만 지나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로부터 3~5분 간격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메시지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두 번으로 그칠까 했지만 10여차례 계속되는 욕설에 견디지 못해 스팸 처리를 했더니 이번에는 다른 전화기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반응을 하지 않자 소리샘에 욕설을 남기고 새벽 3시에 전화를 하고…. 도무지 정상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고객은 자신이 모 대학 교수이고 학생들에게 '인의예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도 서슴없이 밝혔다. 메시지 말미의 아무개 교수라는 붙임이 메시지의 폭언보다 더 심한 상처를 내게 안겨 줬다. 시정잡배가 아니고, 사회적인 지위와 책임이 있는 대학 교수가 그런 식의 대응을 했다는 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대학 교수를 다시 보게끔 하는 계기가 됐다. 블랙컨슈머는 이렇게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와 버렸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가장 큰 우려는 블랙컨슈머가 단순히 악성고객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보험사 직원들도 피해자다. 우리 직원들, 특히 일선창구나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이 같은 블랙컨슈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심지어 이를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신입직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소비자보호가 성숙한 사회의 값어치라면 스스로 보호 받을 가치를 만드는 것 또한 소비자의 공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절대 갑과 절대 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의 소비자이면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또한 소비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는가? 자칭 캠퍼스에서 인의예지를 가르친다는 사람의 폭언 메시지가 모두 남아 있다. 이를 돌려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분개했다. 최소한 학교에는 알려서 학사에 참고토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법조인의 말씀처럼 그는 초짜가 분명하다.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고스란히 남겨뒀으니 말이다. 염려되는 점은 그대로 뒀다가 고질적인 블랙컨슈머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신문고를 들먹이는 폼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끝 간 데 없이 괴롭힐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보다 못한 담당 간부가 직접 찾아가 전화요금 등의 명목으로 소액 경비를 건네고 끝냈다기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날 밤 "중용에 써 있기를,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 소인지중용야 소인이무기탄야, 기탄없이 사시게"하는 문자를 거푸 세 번이나 보내왔다.  100만원 요구를 과하다고 해 소인배라 놀리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소인배가 될 것이다. 몸에 박힌 가시가 오히려 나를 지켜줬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블랙컨슈머가 회사를 튼튼하게 만드는 가시의 역할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는 참 어처구니없는 블랙컨슈머였다! 조재홍 KDB생명 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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