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상무, 호텔 빵회장, 조폭우유 등 이슈되면서 '갑을' 관계 재조명-이번 사건 비꼬아 비판하지만 일반인들도 감정노동자에게 '갑'질하는 경우 다반사-백화점서 쓰던 제품 새 제품이라고 우기며 교환해달라는 '정여사'-호텔서 베개 냄새난다고 숙박비 안 내..카지노서 돈 잃고 욕설 퍼붓는 '왕상무'-평소 '을'을 자처하면서도 백화점, 마트, 호텔에서는 '갑' 행세를 하는 비겁함이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지 자성해야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아니, 이따위 물건을 팔아놓고 돈을 받아 그래? 한번도 안썼다고 몇 번을 말해. 그런데 근데 긁힌 자국이 있다고. 됐고! 당장 바꿔줘."지난 12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아웃렛 매장에서는 '오늘도' 물건 교환과 관련한 고객불만이 쏟아졌다. 이날 40대 중반인 남성고객은 "새로 사간 제품에 하자가 있으니 바꿔달라"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매장직원은 이미 사용한 흔적이 있다며 교환이 불가하다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승강이를 지켜보던 50대 주부 정모씨는 "말끝마다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얘기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판매직원이 무슨 죄냐"며 혀를 차고 지나갔다.포스코 '라면상무'에 이어 호텔 '빵회장', 남양유업 '조폭우유' 사건까지 터지며 그동안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른바 '갑·을'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이 맛없다며 뺨을 때린 대기업 임원, 호텔에서 차량 이동을 요청한 호텔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한 제빵업체 회장, 대리점주에게 무리하게 물량을 떠넘기는 본사에 국민들이 이토록 공분하는 이유는 부와 권력을 가진 '갑'이 '을'에 가하는 횡포로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일반인들도 '갑'이 되어 똑같이 '왕상무, 빵회장'이 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백화점, 마트다."눌러붙은 기름때가 분명히 있는데도 막무가내인거예요. 뜯자마자 갖고 온거라며 교환해달라더라구요. 심지어 몇 번 쓴 보온병도 보온이 잘 안된다며 새 것이니까 바꿔달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말도 안되게 떼쓰는 경우 엄청 많죠. 그래도 '손님이 왕이다'라는 것 때문에 결국 고개 숙이죠. 저희는 서비스업이니까.."롯데백화점 관악점 주방기구용품 판매직원 김모(40)씨는 "진상고객 중 제품을 바꿔달라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심하게 욕설을 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낮춰보는 경우가 아직까지 있어 그럴 때는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접수된 고객불만처리접수(VOC) 등록건수는 올 1월~4월까지 전년동기대비 20% 줄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대면하는 콤플레인은 집계되지 않아 실제 매장직원들이 처리하는 고객불만접수는 반영되지는 않는다. 현장 직원들은 "예전과 비하면 시민의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악질인 고객은 있다"고 입을 모았다.가공식품코너 직원은 "최대한 고객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접수처리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영수증도 없는데 사갔다고 우기고 바꿔달라는 고객들도 있고..그래도 백화점 이미지를 생각해서 응대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수년 동안 입던 오리털파카를 갖고 와서 털이 빠진다며 새걸로 교환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며 "백화점서 대우받고 싶어하고 갑질하는 고객 수둑룩하다"고 꼬집었다.
▲라면상무, 빵회장 등을 비꼬아 비판하고 있지만, 일반인들도 감정노동자에게 '갑'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불리할 땐 '을'을 자처하면서도 백화점, 마트, 호텔에서는 '갑' 행세를 하는 비겁함이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감정노동자들이 심한 고충을 느끼는 곳 중 하나가 호텔이다. 돈을 낸 만큼 최상의 서비스를 누리고 가겠다는 일부 고객들의 '갑질' 때문에 그토록 꿈꿔왔던 호텔리어를 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직원도 있었다."호텔 예약실에 있다가 떠나는 분들 참 많아요. 대부분 일에 치인다기보다 마음이 지쳐서 관두는 경우죠."강남의 A호텔 직원은 "호텔의 특성상 50대 호텔리어들도 아들뻘인 20대 젊은 고객들한테 허리를 굽히고 고개 숙이면서 인사한다"며 "단 1명의 고객에게라도 만족을 줘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모든 상황을 수용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처받는 분들은 결국 짐을 싸고 나간다"고 설명했다."한번은 특1급만 다니던 고객이 있었어요. 처음 우리 호텔 왔을 때부터 모든 게 성에 차지 않아했죠. 조식부터 객실까지 하나하나 트집을 잡고 늘어서서 결국 객실팀장이 머리숙여 사과하고 무조건 납작 엎드렸어요. 블로그에 써서 올린다고 하면 대책없거든요. 이후에도 카카오톡이며 문자로 수시로 연락하며 고객관리를 했어요. 무려 3개월동안요. 감정 콘트롤을 하지 못하면 호텔에 못있어요."서남부 지역의 B호텔 직원은 "1박 투숙 후 베개에서 냄새가 난다며 숙박비를 못내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또다른 고객은 호텔서 자고 난 다음 피부에 트러블이 났다며 병원비를 청구하겠다는 이도 있었고, 호텔 체크인 시간이 2시인데 2~3시간 전부터 와서 빨리 방 안준다고 떼쓰며 화내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두 경우 모두 돈을 받지 않았다"고 회고 했다. 그는 이어 "호텔은 돈 낸 만큼 서비스를 받아야한다는 기대치가 매우 높다"면서 "이 때문에 호텔에서 일하는 분들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3교대 로 돌아가 체력도 힘든데 웃으면서 응대해야하니까 고되다"고 덧붙였다.C호텔 직원은 "고객이 느끼는 보상심리, 즉 '갑이 되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정도'는 마트가 30, 백화점 70, 호텔이 100이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갑'이 된 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 호텔업계 관계자는 "라면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맛이 없다고 폭행을 가할 수는 없는 것처럼, 돈을 내고 서비스를 누릴 권리는 있지만 이를 착각해 상대방을 무시하란 말은 아니다" 라고 꼬집었다.카지노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진다. 한 카지노 딜러는 "게임에서 진 고객이 화풀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번은 VIP고객이 '너 이XX, 나 때문에 먹고사는 주제에..'라며 시비를 건 적이 있다.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에 왜 그러시냐며 좋게 달랬다가 '실실 쪼갠다'며 모욕적인 욕설을 들었다. 그럴 때 계속 일을 해야하나 싶다"고 씁쓸해했 다.서비스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이 왕이다'라는 것은 왕처럼 모시겠다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다짐인 거지 실제 고객이 왕처럼 직원을 하대하라는 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 스스로 시민의식을 돌이켜보며 누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자성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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