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구텐베르크(Guttenberg)는 독일 바이에른 명문 귀족의 성(姓)이다. '문중'에는 히틀러 암살 시도에 참여한 장교도 있어 역사 앞에 부끄럽지도 않다. 이 구텐베르크 가문에 유력하고도 유망한 정치인이 있었다.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그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늘 인기순위 상위의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2011년 국방부 장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으니, 박사 논문 표절이다. 그의 대학 성적은 3등급(Befriedigend)이다. 원래 이 성적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특별허가를 받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그도 임원으로 있는 회사에서 75만유로를 대학에 기부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숨마-쿰-라우데(최우수)의 평가를 받았다. 논문지도 교수는 황송하게도 독일 공법학계의 마지막 천재라는, 우리나라 헌법교과서 본문에도 나오는 피터 해벌레였다. 논문이 출간되자 2011년 2월에 한 학자가 서평을 쓰다 우연히 몇 구절이 표절된 것을 발견하고 언론에 알렸더니 인터넷 수사대가 베낀 부분을 점점 더 많이 밝혀냈다. 수천 명의 대학교수들이 비난 성명을 내고, 수만 명이 연방 수상에 보내는 공개서한에 전자서명을 하고 나서야 결국 자진해서 대학에 학위 철회를 요청했다. 연방 수상은 자신의 내각에 속한 국방부 장관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야당의 비난은 거세었고 결국 3월1일 장관직에서 사퇴했다. 표절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는 4월 중순 한달 남짓 지나자 다시 정치인 인기순위 4위에 올랐다. 우리 사회에서도 요새 들어 표절 시비가 꽤 많이 벌어진다. 표절을 발견하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일단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면 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난다. 표절 시비를 피하기도 쉽지 않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칼럼의 문패를 달기까지 편집부와 많은 고민을 했고 '낯선 시선'이라는 표현이 참신하다 여겼다. 그러나 낯선 시선을 표제어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참신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래서 글쓰기 지침으로 이 정도면 어떨까 한다. 정치인이 논문을 쓰려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학문이 신자유주의적 실용주의로 기울었다 하여도 진리 혹은 진실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드나들 영역은 아니다. 적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폴리페서 밑에서 논문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도할 생각이 없는 지도교수 밑에서 '무사히' 논문이 통과되더라도 그에 대한 평판이 좋을 수 없다. 특히 연예인의 경우 굳이 쓰겠다면 인터넷 수사대가 있으니 언론의 관심을 끌지 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글의 뼈대는 스스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째로 베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세상에 드러난다. 이 뼈대에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을 붙여야 하는데 컴퓨터 마우스를 사용하지 말고 직접 쳐서 옮길 것이다. 옮기는 과정에 내 생각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내 뼈대에 들어맞지 않는 구절은 고치게 된다. 이 살에 각주를 달면 되겠는데, 때로는 내 생각이 많아져 각주를 달기에는 서로 너무 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누군가가 제3자의 글을 pdf 파일이 아니라 우클릭 본능을 자극하는 워드나 한글 파일로 보낼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권하는 마녀임에 틀림없다. 각주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외국 문헌의 경우 고의로 스펠링을 한두 자 틀리게 하거나 다른 페이지를 적시하여 함정을 파놓는 필자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각주에 인용할 문헌은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러저러하게 세상은 점점 더 재미있고, 좋아지고 있다.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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