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경제는 스핑크스처럼 우리를 위협한다. 경제가 던지는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그 대가로 손실을 입기 십상이다. 하지만 복잡한 경제 현상을 관통하는 원리를 이해하거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남보다 앞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알쏭달쏭한 경제 수수께끼를 '스핑크스 경제'가 풀어 나간다.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돈은 언제나 섹시한 주제다. 기술도 그렇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 디지털캐시의 등장을 맞이한 호들갑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사적인 전자화폐가 재빠르게 달러나 독일 마르크와 경쟁하리라고 예측했다.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이 구닥다리가 될까 걱정했다." (The Economist, E-Cash 2.0, 2000.2.19)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화제가 되면서 민간에 의한 화폐발행 가능성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이 이슈는 다음 물음으로 나눌 수 있다. 비트코인이 화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비트코인과 비슷한 다른 가상화폐가 속속 등장해 통용되면서 가상화폐의 규모가 확대될까? 결국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위협을 받을 것인가?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비트코인의 실험이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내다본다.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지금 우리가 쓰는 화폐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모르되, 새로운 형태의 돈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비트코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곳이 영국의 경제매거진 이코노미스트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디지털 금을 캔다(Mining digital gold)'라는 기사에서 "비트코인이 망하더라도, 기존 금융체계를 찌그러뜨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트코인의 본질을 둘러싼 질문들= 비트코인이 화폐의 반열에 오르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교환매개, 지급, 가치저장 등이다. 교환매개란 상품을 팔아 다른 물품을 구입하는 거래의 매개 역할을 말한다. 지급은 예컨대 월급을 주고 돈을 빌려주거나 받는 것처럼 금전적인 관계를 맺거나 청산하는 기능을 뜻한다. 가치저장 수단이 되려면 값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교환을 매개하고 지급수단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 지갑을 내려받아야 한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비트코인으로 계산한다고 하자. 그 편의점이 비트코인 지갑을 갖추지 않았다면 계산이 이뤄지지 못한다. 비트코인이 화폐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정도의 기반을 갖추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비트코인을 받는 곳은 소셜 미디어 사이트 레딧(Reddit), 웹호스팅 업체 워드프레스(WordPress) 등 정도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은 1990년대 중반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여러 전자화폐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커 보인다. 디지캐시, 사이버캐시 등 당시 전자화폐는 소프트웨어로 계좌의 돈을 주고받는 결제를 중개했다. 비트코인이 돈과 독립된 가상의 존재라는 데 비추어 훨씬 현실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통용되지 못했다. 이용자가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했고, 그런 이용자가 적었고, 그래서 쓸 수 있는 곳이 적었다. 이후 2000년을 전후로 2세대 전자화폐 바람이 불었다. 신용카드보다 저렴한 수수료로 소액결제를 중개한다는 업체들이 도전장을 냈다. '온라인 계정에 돈을 이체해 두고 소액을 차감한다', '결제액이 쌓이면 신용카드로 계산하도록 한다', '달러를 e메일로 이체한다' 등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그러나 2세대 업체도 살아남지 못했다. 인터넷 소액결제는 이미 갖춰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 휴대전화 요금에 더해지는 방식이 채택됐다. 현금을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결제로 쇼핑 사이트에 쌓아 놓고 아이템을 구매할 때마다 금액을 빼내는 방식도 널리 활용됐다.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다.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처럼 일반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난 3월엔 어떤 캐나다인이 자신의 집을 내놓으면서 매각대금을 비트코인으로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얘기가 BBC 방송 전파를 탔다. 당신이라면 집값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는가? 회사에서 월급을 비트코인으로 지급한다고 하면 받을 것인가? 수용성의 측면에서 비트코인을 게임머니를 비롯한 다른 범주의 사이버머니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게임머니는 이제 법으로 금지됐지만, 현금으로 거래됐다. 제한적인 영역이지만 무엇에 쓸지가 분명하고 효용을 지닌 특성 덕분이었다. 반면 비트코인은 제시할 효용이랄 게 딱히 없다. 굳이 들자면 희소성인데, 그 희소성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현금을 포기할 성싶지는 않다. ◆디지털 시대의 어설픈 연금술= 비트코인은 가치저장 수단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기존 화폐는 값이 떨어지는 위험이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가치가 안정적이지 않다. 일부 사람들에게 투기 수단은 되겠지만 경제 전체에 통용되는 화폐는 될 수 없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며, 법정통화는 그 가치를 정부가 뒷받침한다"며 "비트코인에는 그런 신뢰 기반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비트코인은 유동성이 제한적이어서 화폐로 쓰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화폐로서 비트코인의 미래는 밝지 않다.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련의 숫자는 그 자체로 값어치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비트코인을 모방한 다른 가상화폐 역시 비트코인과 같은 궤도를 맴돌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가 속속 등장해도 중앙은행의 발권력에는 구멍이 나지 않을 것이다. 화폐에는 주술적인 기운이 감돈다. 정교한 기술이 집약되긴 했으되 결국 종이조각일 뿐인 물질이 높은 가치를 지닌 데서 비롯되는 마력이다. 비트코인 주조자는 디지털 시대의 연금술사다. 이들은 과거 연금술사들이 다른 물질에서 금을 빚어내려고 한 것과 비슷하게 숫자에 숨을 불어넣어 화폐를 창조하는 꿈을 꾸고 있다. 백우진 정치경제부장 cobalt100@그래픽=이주룡 기자 lj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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