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교각살우(矯角殺牛)란 말이 있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이다. 정치권에 대한 특권 폐지 여론을 바라보면 그러하다. 불합리한 특권을 없애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국민들이 국회의원의 특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묻자 '면책특권'이라는 대답이 42.8%로 가장 많았다. 민주통합당 정치혁신실행위원회가 지난 9일부터 나흘 동안 수도권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같은 여론조사에 답변을 했던 기자는 '가장 유지해야 할 권한'으로 면책특권을 꼽았다. 정치 쇄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필요한 권한과 불필요한 특권은 구분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면책특권이 무엇인가.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토론과 발언을 보장해 국민의 대표로서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다. 야당에게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실제로 면책특권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이다. 노회찬 전 의원이 지난 2005년 '떡값검사 7인'의 명단을 공개한 적이 있다. 노 전 의원이 명단을 공개하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돼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타깝게도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렸다는 이유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의원직을 잃었던 것이다.지난 1991년에는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 사건이 있다. 유 의원은 당시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적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2013년의 기준에서 큰 문제될 수 없는 '주장'이 그 때의 시대상황에서는 구속될만한 사유였다. 다행히도 당시 법원은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질문할 원고를 사전에 배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속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면책특권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복잡하게 얽혀있는 권력의 생태계에서 이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떡값검사의 명단을 확보하고도 침묵할 것이다. 용기 있는 '제 2의 노회찬'이 나타난다면 곧바로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물론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정치적 공세를 위해 확인되지 않은 악성 루머를 무차별적으로 '폭로'하는 경우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폭로식 정치는 그간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상대에 대한 비방 수위는 도가 지나치다. 그렇다고 조사권이 없어 객관적 자료 확보의 한계가 있는 의원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용기'와 '무차별한 폭로'를 동일한 가치로 제단해선 안 된다.그러나 국회법 제146조는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면책특권의 대상은 직무와 관련 없이 타인을 모욕하는 등의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권한과 특혜는 다르다. 헌법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과 불합리한 특혜는 구분해야 한다. 정치인이 밉다고 그의 권한마저 모두 빼앗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차분히 내용을 살펴보고 사안별로 취사선택해야 할 때다.이민우 기자 mw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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