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먼저 주목한 '한지 화가' 서정민, 베니스비엔날레 출품

한지의 멋, 베니스를 만나다세계최고 권위 '비엔날레' 특별전에 서정민 작가 선정[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한지 화가' 서정민 작가(사진)가 올해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관 전시 작가로 선정됐다. 서 작가는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지난 5년간 24번의 해외 아트페어 참가 이후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같은 성과를 이뤘다.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 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널찍한 작업실에는 온통 돌돌 말아진 한지들이 가득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특별관 전시를 위해 그는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오는 5월 초에는 작품을 비엔날레 주최측에 보내야 하기에, 최선의 한지작품을 만들어 내려고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가 비엔날레에서 보여줄 작품은 333.3×197cm, 즉 500호 크기의 작품 3개를 연이어 붙인 전체 1500호 크기의 대형 한지 작품이다. 둥글게 말려진 한지를 오려 그 조각을 이어붙이는, 공력이 대단히 많이 투여되는 작업이다. 지난 1년간 서 작가는 각고의 노력끝에 비엔날레 주최측에 출품 신청서를 보냈으며, 지난해 12월 초 주최측으로부터 전시 초청을 받게 됐다. 서 작가가 전시할 공간은 베니스 '팔라조벰보'(Palazzo Bembo)라는 건물 2층이다. 특별관 전시는 '퍼스널 스트럭처스(Personal Structures, 개인적인 구축물)'이라는 주제로 열리게 되는데,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등 현대미술의 전설적인 거장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에 시작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격년 전시로, 전 세계의 비엔날레 중 가장 대표성을 지닌다. 여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작가들은 전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55회째로, 쟈르디니의 중앙관과 각 국가관, 그리고 아르세날과 팔라조벰보의 전시를 포함한다.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이 각 국가별로 대표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소개하는 장이라면, 팔라조벰보 같은 특별전은 전 세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해 '공모전' 형식으로 선정된다. 서 작가는 "국내에서는 한지 작업이 오히려 주목을 못 받는 반면, 해외에서는 동양적인 이미지와 역사의 축적이라는 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면서 "10여년간 한지작업을 하면서 최근 5년간 집중적으로 해외 아트페어에 작품을 선보였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세계 최고의 미술관인 '구겐하임'에 도전장을 내밀겠다"고 밝혔다.

서정민 작가의 한지 작품 중 하나

서정민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 예정 중인 출품작 부분 모습.

 서 작가는 먹으로 쓴 한지 종이들을 압착해 두루말이 형태로 만들고, 측면을 잘라 만든 조각을 작품화면에 붙여 연결한 작업들을 주로 한다. 그의 그림에는 동양화가 가지는 기운생동이 한지를 말고 붙여 이은 조형으로 승화된다. 그는 소재로 쓸 한지를 일산의 서예원에서 주로 구입한다. 한지를 말아서 자르면 남는 글씨부분이 작품 안에 이어져 선을 만들어낸다. 의도적으로 노란, 파란색 등 색이 있는 한지를 이용해 작품의 변주를 더한다. 서 작가가 해외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한 지는 지난 2007년부터다.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부터, 이스탄불(터키), 칼스루에(독일), 런던(영국), 대만, 마이애미(미국), 바젤(스위스) 등 수많은 아트페어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이러한 활발한 노력들 덕에 현재 그는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얀코센(Jankosen) 갤러리와 터키 이스탄불 린아트(Linart) 갤러리 전속작가로 계약돼 활동 중이다. 얀코센에서는 유럽과 미국을, 린아트에서는 중동지역 유통망을 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서 작가와 계약한 전속화랑은 없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오는 6월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린다. 특별전이 열리는 팔라조벰보에서의 전시는 프리뷰가 5월 29~31일까지며 6월 1일 개막된다. 서 작가는 이번 특별전 작품을 위한 작가노트에서 "한국 남쪽 끝자락 작은 강이 흐르는 농촌마을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사는 곳에는 서당이 있었다"면서 "한지에 쓰여진 미완성의 글씨들이 습작으로 버려지는 반복된 상황들을 늘상 보며 살았다.1970~1980년대 개발열풍이었던 '근대화'라는 변화속에 파괴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속에 되짚어 보려고 한다"고 적고 있다. 그는 이어 "과거에 대한 것들을 유채재료를 사용했던 초기 작업과정에서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기억속에 존재하는 차갑지 않은 따뜻하고 은은하며 간결한 우리정서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재료를 실험한 결과 현재 작업중인 한지에 주목하게 됐다"며 한지작업를 하게 됐던 계기를 설명했다.  더불어 서 작가의 작품은 단지 작가의 기억뿐만 아니라 우리가 없애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의 축적이며 저장이고 기록이다. 나아가 동시대 세계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개발과 근대화라는 미명 하의 인간들의 파괴적인 무차별적인 행위에 대한 자성이며 작가로서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팔라조벰보 특별전은 뉴욕에서 2002년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글로벌아트페어재단(Global artfair Foundation)에 의해 관리감독을 받는다. 팔라조벰보관은 베니스의 명소로, 산마르코 광장 옆에 카날 그란데와 마주하고 있다.15세기에 베니스의 명문귀족인 벰보 가문에 의해 지어진 팔라조벰보와 한국의 전통 한지가 어떻게 어울릴지 궁금하다.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관인 '팔라조 벰보'(Palazzo-Bembo) 건물.

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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