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불법체포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는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경우라도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대법원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을 종합하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위법행위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뿐 아니라 그에 터잡아 획득한 2차적 증거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며 “미란다 원칙을 무시한 채 이루어진 강제연행은 전형적인 위법 체포에 해당하고 체포 상태에서 이루어진 음주측정요구는 음주운전 행위에 대한 증거수집을 목적으로 한 일련의 과정에서 이루어져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대법원은 이어 “위법한 강제연행 상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호흡측정 결과에 대한 탄핵을 하기 위해 스스로 혈액채취 방법에 의한 측정을 요구해 이뤄졌더라도 위법 체포상태에 의한 영향이 완전하게 배제되고 피의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개입되지 않은 이상 불법체포와 증거 수집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미란다 원칙이란 피의자를 체포함에 있어 피의사실의 요지와 체포 이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변명할 기회를 주도록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한 제도다. 대법원은 이를 위반한 체포행위는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2007년 전원합의체 판결했다.A씨는 2008년 12월 혈중알콜농도 0.142%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이듬해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접촉사고 시비로 화나고 불안한 마음에 차에 있던 술을 마셨을 뿐, 운전 당시엔 아주 적은 양의 술만 마신데다 불법체포 이후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A씨가 음주는커녕 사고조차 부인하며 임의동행을 거부하자 팔다리를 잡아 강제로 순찰차에 태워 데려갔다. 이후 ‘구속될 수 있다’, ‘기계로 재측정은 불가하다’는 경찰의 말에 A씨는 음주측정과 채혈검사에 동의했고, 담당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현행범으로 적법체포했다고 수사보고를 작성했다. 1심은 “A씨를 사고 현장에서 지구대로 데려간 경찰관의 행위는 임의동행이 아닌 강제체포에 해당해 그 후 이뤄진 음주측정결과, 채혈결과는 모두 위법수집증거”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뒤이은 2심은 그러나 A씨가 자기에게 더 유리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혈액측정을 요구한 사정 등을 통합하면 불법체포와 (음주측정 이후 이뤄진)혈액측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희석 또는 단절됐다는 취지로 유죄로 판단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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