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왜 실패王을 뽑고-제일기획 CEO는 왜 실패 격려하고-3M은 왜 실패파티 여나[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건만 막상 실패를 하고나면 이토록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말도 없다. 실패를 하면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나오고 의기소침해진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쓰디쓴 좌절감만 가슴 속에 가득 찬다. 이처럼 실패는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 지극히 부정적인 단어다. 만약 실패를 독려하는 기업이 있다면 어떨까.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모든 실패를 감추고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능력 부족이나 부주의로 인한 실패가 켜켜이 쌓이면 치명타가 되겠지만 실패를 통해 배우는 '똑똑한 실패'는 다르다. 똑똑한 실패는 사전에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놓은 덕에 실패한 이후 인과관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실패를 통해 학습한 새로운 지식은 다른 프로젝트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서 똑똑한 실패를 독려하는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펴낸 '똑똑하게 실패하기-창조적 성과 창출의 조건' 보고서를 토대로 실패를 창조적인 성과로 연결시키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진현 수석연구원은 "많은 기업들이 실패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미흡한 편"이라며 "똑똑한 실패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효과적으로 실패하는 방법론을 전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똑똑한 실패' 지원하는 창조적 기업= 3M은 지난 1948년부터 '맥나이트 원칙'을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직원의 실수를 용인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율권을 명시한 것. 에드먼슨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칭찬받을 실패'만이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에드먼슨 교수는 불확실성 탓에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도 원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 등을 칭찬받을 실패로 규정했다. 반면 정해진 과정·관행을 어기거나 실수나 부주의로 사양에서 벗어나는 사례는 비난받을 실패하고 했다. 똑똑한 실패를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지식을 흡수해야 한다. 실패학자 마이클 럼은 실패할 수 있는 용기와 실패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정도에 따라 실패자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타고난 패배자, 전문가, 생존자, 정복자 등이다. 타고난 패배자는 실패로부터 학습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없고 새로운 도전을 꺼려한다. 이 윗 단계인 전문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꺼려하는 유형으로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생존자는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고 매번 도전하지만 실패를 통해 얻는 것은 없다.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정복자는 실패에서 창조적 성과를 이끌어낸다. 실패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실패로부터 많은 것은 학습하기 때문이다. '실패 정복자'에 해당하는 창조적 기업은 직원들에게 실패를 독려하고 실패를 한 다음에 학습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실천한다.
◆'실패 정복자'의 네 가지 조건= 그렇다면 실패 정복자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낮춰야 한다. 대부분의 직원은 실패 위험이 높은 과제는 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실패로 인한 비난과 인사 고과에 불이익이 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려 해도 경영진이 막는 경우도 있다. 경영진이 개입해 직원의 자율권을 제약하고 창의성 발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반면 실패 정복자 기업은 실패를 격려하는 조직분위기를 조성한다. 예를 들어 혼다는 '실패왕'을 선발하고 3M은 실패한 연구원을 위해 '실패 파티'를 열어준다. BMW는 '이달의 창의적 실수상'을 선정한다. 국내 기업 가운데 제일기획은 광고 수주에 실패했을 때 최고경영자(CEO)가 팀원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낸다. '수주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수주를 위해 최선을 다한 프로젝트 팀원의 노고를 치하하며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줄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이다. 실패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실패를 은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러나 실패를 숨기면 나중에 더 큰 실패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만큼 이를 과감히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회사는 직원 스스로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때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실수를 했다고 무조건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왕 실패할 거면 초기에 많이, 빨리 실패하는 것이 좋다. IBM 창업자 토마스 왓슨은 "성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실패율을 2배로 늘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패가 많을수록 창의적인 결과가 나올 확률도 증가한다고 믿은 것. 다이슨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제임스 다이슨은 청소기 시험 제작을 5127번이나 한 끝에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개발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실패 경험을 자산화해야 한다. 실패로부터 학습하면서 새로운 과제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 후 획득한 지식과 새로운 관점을 응용하면 의도치 않았던 창의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다만 실패 원인을 충분히 검토하고 이를 다른 과제에 응용해보는 시도가 뒷받침 돼야 한다. 이는 회사 차원에서 '누가'가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에 관심을 두는 데서 출발한다. 실패 원인을 개인의 실수로 간주하기 보다 조직 차원으로 끌어올려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식이다. 일례로 3M은 매주 금요일 오후 동료와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쇼 앤드 텔 타임'(Show and Tell Time)을 운영 중이다. 고어 앤 어소시에이트는 일주일 중 반나절을 직원들이 마음껏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장난시간'으로 두고 있는데, 의료기기 생산팀이 이 시간을 활용해 경쟁사 제품 대비 수명이 3배나 긴 기타 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진현 수석연구원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실패를 용인하는 실질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며 "위험을 감수한 어려운 과제에 대해서는 단기 관점의 성과 평가를 지양하는 한편 실패를 촉진하는 구체적인 평가 제도를 마련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혜정 기자 park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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