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
2600년 전, 그리스 시대의 일이다. 이집트 왕은 탈레스가 수학에 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어 주겠냐?"고 물었다. 잠시 골몰하던 탈레스는 이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탈레스는 기하학의 원리를 응용하면 태양의 그림자 길이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길이가 자기 키와 같아지는 시각에,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를 측정함으로써 간단히 피라미드의 높이를 산출해냈다. 탈레스는 기원전 624년, 그리스의 밀레토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소금과 올리브유 상인으로 돈을 모아 이집트로 유학 가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 후 고향에 돌아와 학교를 세워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는 관념에 치우친 '학문만을 위한 학문'보다는 실생활에 유용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신화나 종교보다는 물질의 근원을 연구하고 자연 현상 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얻는 데 몰두했다.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로 이름을 떨친 탈레스는 비즈니스에도 능통했다. 사람들이 철학은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수군대자, 그는 철학자도 원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천문학에 밝은 탈레스는 별자리를 보면 날씨를 예견할 수 있었다. 어느 겨울날, 그는 다음 해 가을의 올리브 풍년을 예감했다. 그리고 올리브 재배지역을 돌아다니며, 기름 짜는 착유기의 '사용권'을 미리 계약했다. 착유기 소유자들의 입장에서는 올리브가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낮은 가격이라도 전량을 쓰겠다는 그의 제안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수확의 결과는 탈레스의 예상대로였다. 풍작으로 넘쳐난 올리브유를 짜기 위해 농부들은 착유기를 구하러 나섰다. 결국 모든 착유기의 사용권을 갖고 있던 탈레스는 높은 값에 착유기를 대여하여 많은 이익을 거뒀다. 탈레스의 이 비즈니스 모델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콜옵션'이란 파생상품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 정도의 금융기법을 구사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스는 농업으로 흥한 이집트와는 달리, 상업으로 부를 이룬 나라다. 또 상업의 발달은 화폐금융이 뒷받침했다. 탈레스가 태어나기 100년 전쯤 그리스의 리디아에서 처음 금속화폐가 만들어졌다. 교환수단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화폐가 등장하자 교역과 금융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상업과 금융의 발달 덕분에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대규모 건축물의 건립이 가능해졌고 장인들은 우수한 조각품 제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눈부신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 가장 밑바닥에는 탈레스와 같은 현인들의 실용주의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탈레스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견제도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파생상품 사례를 소개할 때 "철학자는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이코노믹스(Economics)'란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는 크세노폴도 상업보다는 물품을 생산하는 농업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의 경이적인 발전은 상업을 중시하고 파생상품까지 받아들인 실용주의적인 금융혁신의 덕이었다. 이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보여준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금융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해본다. 파생상품을 투기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헤지를 위한 건전한 금융기법의 하나로 파생상품을 발전시켜야 한다. 파생 등 금융의 혁신은 산업을 자극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이호철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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