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지자체 권위주의적 용어 여전서울시 적극 개선 움직임 눈길 [아시아경제 정종오·나석윤 기자] #1 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시민들의 행사장에 참석해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말을 한 뒤 자리를 떴다. 잠시 뒤 해당 지자체에서 보도 자료가 나왔다. "○○○ 시장이 시민들의 행사장에 참석해 노고를 치하했다"는 내용이었다. #2 지난해 12월 초 한 중앙부처에서 금연 정책과 관련된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보도 자료는 "국민건강진흥법이 확대, 시행에 들어가며 2013년 6월까지 '계도'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고 돼 있다. #3 서울의 한 구청이 빈민 공동체를 겨냥해 내놓은 보도 자료에 "불법행위 엄단!" 등의 용어가 나열돼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자료를 내놓아 빈축을 샀다.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용어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치하' '계도', '영접', '시찰' '윤허' 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권위적이고 수직적 관계를 뜻하는 용어가 많다. '치하'는 아래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계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깨치어 일깨워 줌'이란 뜻으로 수직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국립국어원은 설명했다. '계도'는 따라서 '일깨움' 등으로 바꿔주는 게 좋다는 지적이다. '윤허'는 '임금이 어떤 일에 대한 신하의 청을 허락한다'는 뜻인데,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내부 문서에서 '장관의 윤허 사안' 등의 말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이 같은 용어의 사용은 단지 용어나 언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시민에 대한 공공기관의 고압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의식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업무 수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식과 실행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특히 용어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 2011년 11월부터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행정안전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립국어원 등과 연계해 용어 개선 결과를 내놓았다. 정부와 공동 업무추진으로 사업효과와 효율성을 높이고 정착시기를 앞당겨 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행정용어는 무려 1066건에 이르렀다. 이 중 국립국어원 심의를 거쳐 옷을 갈아입은 용어는 877건으로, 가령 지하철 역 등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영업을 하는 이들을 비하적으로 부르던 '잡상인'이라는 용어를 '이동상인'으로 고치도록 했다. 그러나 중앙부처와 많은 지자체들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이들 기관이 내놓는 보도 자료에서는 지금도 '계도' '시찰' '영접' 등의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권위주의적 용어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기관들이 상당하다. 특히 기관 내부적으로도 유통되는 문서에서는 권위주의적인 것을 넘어서서 전근대적인 용어 사용도 여전하다. '윤허' '하사' 등의 표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이런 용어의 문제점을 해당 부처와 지자체에서도 알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놓는 보도 자료에 대해서 국립국어원이 잘못된 표현은 없는지 등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한다. 모니터링 된 내용은 곧바로 해당 단체에 전달된다. 지난 한해 매일 몇 건씩 '부적절한 정책 용어에 대한 개선 권고' 공문이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전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용어 개선 작업에 앞장서야 할 중앙행정부처와 지자체의 '국어책임관'들도 별 별 역할을 못하고 있다. 대개 국어책임관을 맡고 있는 대변인실부터가 권위주의적인 보도 자료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일선 관공서에 정기적으로 권고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바로잡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강제기준도 아니어서 개선 의지가 없는 곳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좀 더 원활할 사업추진을 위해 올 상반기에 '서울시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사용조례'를 제정한다. 정종오·나석윤 기자 ikoki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정종오 기자 ikokid@사회문화부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